전 서기장 사고기록
여기까지 와서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작은 흰색 상자다. 겉보기에는 완벽한 정육면체지만 검사를 해보니 미세하게 비틀려 있다. 표면의 감촉은 유리보다 거칠고 자갈보다 매끄럽다. 모서리들은 전부 부드럽게 처리되어 있다. 놓여 있던 위치상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도, 만져 보면 볕 아래 데워진 것처럼 따뜻하다. 크기와 무게는 웅크린 개 정도 되며, 들어 올려 안을 수도 있다. 나는 보자마자 그것이 살아 있는 것인 줄을 알았다. 그것은 구석에 모셔 두었다. 후손들의 말처럼 스스로 움직일 듯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말 정도는 걸 것 같다. 내가 이미 그 목소리를 알고 있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이미 내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도. 내가 맡은 임무는 그것을 인류의 앞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역시 위치상, 미래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들었다. 그 점에 대해서 주절주절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기가 어딘지, 어떻게 왔는지, 그런 것을 굳이 설명할 이유가 없다. 누가 알아들을 만하게 말할 재주도 없다. 그래 봤댔자 무슨 소용인가? 나는 우리 후손들처럼 친절하지 않다.
후손들은 손으로 정성껏 눌러 쓴 쪽지를 두 번 접어 그것 밑에 깔아 뒀다. 손으로 썼는지 뭘로 썼는지... 하여튼 틀림없는 손글씨처럼 보인다. 사용설명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용과 관련된 이야기는 전혀 없다. 그들이 뭔가 메시지를 남겼다면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그보다는 더 세련된 방식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게 뭔가 대체? 처음에는 어떤 실수가 있었던 게 아닌가, 그 다음에는 내가 미쳐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우주의 넓음에 비하면 그것(들)이 놓인 위치는 더 정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며, 내가 이곳까지 올 수 있도록 만든 우리 기술력의 정교함 또한 그렇다. 그러니 이것은 대체로 맞는 방식으로 도착했다고 봐야 하며, 나 역시 멀쩡한 상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만 반년이 걸렸고 돌아가는 데에 또 반년이 걸릴 예정이다. 이렇게 딴생각에 열중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홀로 준비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부산히 몸을 움직여야 한다. 나는 바쁜 와중에 약간의 슬픔을 느끼고 있다. 후손들의 글씨가 너무 단정해서 자꾸 들여다 보고 싶어지기 때문에. 부디 헤아려 달라는 건 뭔가? 잘 모르겠지만 그들은 약간 슬픈 것 같다. 악마를 떠나보내는 일이 슬픈가?
나는 돌아가기 시작한다. 악마와 함께. 악마가 움직인다! 내게는 우선 으스스한 생각이다. 당신은 믿지 않습니까? 그들이 악마를 만들어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악마라고 하지 않습니까? 악마가 움직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두렵지 않습니까? 당신이 곧 악마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지금 악마를 데려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당신은 후손들을 믿지 않습니까? 신도 만들어낸 후손들을? 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머릿속에 그 자신의 목소리로 말을 거는 종류의 기계일지도 모르겠다는 데에 생각이 닿는다. 아니면 정신의 활동을 그런 방향으로 유도하는 식으로. 의혹을 증폭시키는 것으로? 어쨌든 내 느낌에 내 생각들은 내 생각이 분명하다. 후손들이라니, 조상들이라니! 어쩌면 그 쪽지가 바로 악신엔진일지도 모른다. 상자는 그냥 누름돌 같은 것일 수도. 두 번 접은 악신엔진이 멋대로 날아가지 않게 말이다. 누름돌이면서 신호기가 아니었을까? 틀림없이 그런 것만 같다. 그것이야말로 미래의 방식일 수 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사용설명을 다시 읽는다.
후손들은 손으로 정성껏 눌러 쓴 쪽지를 두 번 접어 그것 밑에 깔아 뒀다. 손으로 썼는지 뭘로 썼는지... 하여튼 틀림없는 손글씨처럼 보인다. 사용설명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용과 관련된 이야기는 전혀 없다. 그들이 뭔가 메시지를 남겼다면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그보다는 더 세련된 방식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게 뭔가 대체? 처음에는 어떤 실수가 있었던 게 아닌가, 그 다음에는 내가 미쳐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우주의 넓음에 비하면 그것(들)이 놓인 위치는 더 정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며, 내가 이곳까지 올 수 있도록 만든 우리 기술력의 정교함 또한 그렇다. 그러니 이것은 대체로 맞는 방식으로 도착했다고 봐야 하며, 나 역시 멀쩡한 상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만 반년이 걸렸고 돌아가는 데에 또 반년이 걸릴 예정이다. 이렇게 딴생각에 열중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홀로 준비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부산히 몸을 움직여야 한다. 나는 바쁜 와중에 약간의 슬픔을 느끼고 있다. 후손들의 글씨가 너무 단정해서 자꾸 들여다 보고 싶어지기 때문에. 부디 헤아려 달라는 건 뭔가? 잘 모르겠지만 그들은 약간 슬픈 것 같다. 악마를 떠나보내는 일이 슬픈가?
나는 돌아가기 시작한다. 악마와 함께. 악마가 움직인다! 내게는 우선 으스스한 생각이다. 당신은 믿지 않습니까? 그들이 악마를 만들어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악마라고 하지 않습니까? 악마가 움직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두렵지 않습니까? 당신이 곧 악마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지금 악마를 데려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당신은 후손들을 믿지 않습니까? 신도 만들어낸 후손들을? 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머릿속에 그 자신의 목소리로 말을 거는 종류의 기계일지도 모르겠다는 데에 생각이 닿는다. 아니면 정신의 활동을 그런 방향으로 유도하는 식으로. 의혹을 증폭시키는 것으로? 어쨌든 내 느낌에 내 생각들은 내 생각이 분명하다. 후손들이라니, 조상들이라니! 어쩌면 그 쪽지가 바로 악신엔진일지도 모른다. 상자는 그냥 누름돌 같은 것일 수도. 두 번 접은 악신엔진이 멋대로 날아가지 않게 말이다. 누름돌이면서 신호기가 아니었을까? 틀림없이 그런 것만 같다. 그것이야말로 미래의 방식일 수 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사용설명을 다시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