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자
나는 창밖의 흐린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나의 사무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의 끝없는 사무를 모른 척하고 있다. 예언자라면 미래의 일을 예정으로 쓸 것이고, 학자라면 미래의 일을 가능성으로 쓸 것이다. 이 신화의 화자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난 일처럼 쓴다. 흐린 날을 보며 비가 왔었다고 쓰는 것이다. 미래의 일을 과거의 일로. 이 화자들은 우리의 인생과 역사를 바꿔 놓은 단 한 번의 아직 내리지 않은 빗줄기에 대해서 쓴다. 아직 흐릴 때에. 그것은 이 신화의 가장 고유한 약속이다. 시인들을 제외하면 세계의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뭔가를 쓰지 않는다. 이 신화의 화자가 된다는 것은 언어의 이상한 사분면을 향해 나아간다(나아갔다 온다?)는 것을 뜻한다. 이 신화는 이중의 미래로 짜인 직물과 같다. 씨실은 보이지 않는 곳까지 뻗어 있는 미래고 날실은 구부러져 우리에게 돌아오는 미래다. 이 신화의 화자들은 그러한 신화 평면의 작은 교차점에서 미래의 미래에 매달려 있다. 그들은 신화와 우리 사이를 오가는 벼룩과도 같다. 그들은 교차된 미래를 향해 뛰어들었다가, 자신만의 후손들을 데리고 우리를 향해 뛰어내린다. 미래의 일을 어제의 일처럼 다루고, 오늘의 일을 미래의 일처럼 다루는 일. 그들의 도약은 점과 같은 두 눈으로 미래의 거대한 격자무늬를 어떻게든 분별해내기 위한 곡예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그저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며 피를 빨고... 이 신화에서 화자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소재는 없다. 우리를 제외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는 별자리로 만들어진 거인의 피부다. 밤이 되며 비가 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