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파시

만약 우리 아닌 이들이 우리를 본다면, 우리가 편지도 없이 갑자기 모월 모시 모처로 움직여 만나는 것을 그들이 본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서로의 거리를 통과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을, 없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음을 그들이 안다면, 그들은 분명히 그것을 텔레파시라고 부를 것이다. 우리는 연장된 두뇌를, 각자의 연접부를, 푸른빛이 나는 타일을 들고 있다. 말의 발명으로부터 우리는 문자라는 첫 부품을 얻었고, 지면과 광원을 합쳐 그 위에 올리는 데까지 결국 나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전에 없던 문장의 교통 속으로 던져진 것이다. 지금 비로소 일어서는 것은 생각이다. 우리라는 생각이 일어선다. 우리라는 윤곽이. 대단하기도 아름답기도 끔찍하기도 한 것이. 예로부터 텔레파시는 책을 뜻해 왔다. 혹은, 텔레파시라는 아이디어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 책이다. 그것은 허공을 지나가던 목소리였다. 빗소리나 물소리가 아닌, 바람 소리도 천둥소리도 아닌, 식물이나 동물의 소리도 아닌,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살아 있는 인간의 것이 아닌 목소리. 그것은 자주 신성하게 취급되었다. 문자는 신상神像이며 제단이었고 책은 그들이 모셔진 장방형의 신전이었다. 신들이 쓰러지고 사당이 무너졌어도 텔레파시는 이 신화 속에 남았다. 그것은 이 신화가 기대고 있던 형식을, 신화라는 허물을 벗으며 스스로를 쌓아가도록 이끌었던 저 책들 사이의 교통을 뜻한다.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들 중 하나는 텔레파시다. 우리는 그것을 얻었다. 전에 없던 책을. 우리라는 윤곽을. 그 앞에 우리는 별 큰 감동 없이, 별다른 미래관 없이, 이렇다 할 종교도 없이, 환멸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며 서 있다. 하지만 그런 때에도 그들은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일테면 개 같은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