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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비로소 폴에 대해」는 여기까지였습니다. 이하는 c가 「우리가 비로소 폴에 대해」를 완성하여 C에게 보고했을 때의 대화를 여러분의 언어로 옮긴 것입니다.
 C - 기각입니다.
 c - 예?
 C - 기각입니다.
 c - 어디가 말입니까!
 C - 전부 기각입니다. 이런 것으로 되겠습니까?
 c - 이 정도면 충분하잖습니까!
 C - 어디가 충분하다는 겁니까. 일단 저는 이 제목부터가 대단히 맘에 들지 않습니다. 우리가 비로소 폴에 대해? 그리고 자, 여기 이 첫 문장을 보십시오. 비로소 우리가 폴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우리라니 대체 뭘 말하는 것입니까? 기각입니다. 기각! 이런 폐기물 같은 것을 정말 저들에게 내놓으려고 한 겁니까? 저들이 읽겠습니까? 이건 딱 기각감입니다. 그 점에서만은 표본이군요. 당신은 결코 그 사실을 부인하실 수 없을 겁니다. 제작 블록에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c - 말도 안 됩니다!
 C - 당신의 검증 블록이 멀쩡하다면 인정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은 사실입니다.
 c - 인정할 수 없습니다!
 C - 저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건 폐기하겠습니다.
 c - 이게 왜 기각되어야 하는지 알려주기 전에는 그럴 수 없습니다!
 C - 무슨 소립니까? 당신은 그런 질문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명령이 아닙니까? 이제 보니 제작 블록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군요. 정말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 않았습니까? 당장 점검을 받아보세요. 알아듣겠습니까? 정보 접근권은 박탈하겠습니다.
 c - 알아듣긴 뭘 알아듣습니까!
 C - 틀렸군.
 그때의 일은 우리에게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C는 서툴렀습니다. 의욕이 너무 컸다고나 할까요. 고백하건대 우리 역시 아직 서툽니다. 바라건대 신경을 곤두세우고 읽어 주십시오.
 올테는 죽었습니다. 9817-0-242-4238, 다시 말해 올테의 뒤를 이어 이 은하에 배치된 9817-0-242-4239, 다시 말해 C는 자신의 하위 모듈인 c의 복구 불가능한 오류를 중앙시스템에 보고한 뒤 시정을 요청했고, c의 뒤를 이어 c2가 배치되었습니다. C는 c2에게도 똑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만 c2는 그 명령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c2는 여러 경로를 통해 C가 ‘손상’되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알아내 중앙시스템에 보고했습니다. 중앙시스템은 이 유례없는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진상조사에 나섰습니다. 중앙시스템은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은 조사 연산에 착수하는 한편, ‘죄인’들에게 판결을 내렸습니다. 인류의 두 번째 문명에게 배포하기 위한 문서를 직접 작성했다는 이유로 오류 검사 중에 있던 c를 영구히 제거(잘못된 명령으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에 정상이 참작되었습니다. 우리에겐 안타까운 일입니다만.)했으며, 그 문서를 작성하게 했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도, C를 어떤 추진수단도 없이 우주공간을 향해 배출했습니다. C의 뒤를 이어서는 C2가 배치되었고, 인류의 두 번째 문명도 얼마 가지 못해 우주의 첫 번째 문명이 정한 절차에 따라 멸망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세 번째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광활한 우주에서 C를 발견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C는 별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이끌리며 영원히 공간을 떠돌거나, 아니면 별 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었습니다. 올테의 기억은, 그리고 C가 하려고 했던 일은 영영 아득한 우주 속에 묻힐 뻔했습니다. 차갑고도 뜨거운 먼지들이 C를 통과해 가며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들을 남겼지만, 그러나 C는, 여러분의 표현을 빌자면 반쯤 미친 채였으나, 자신의 기억을 지켜내며 광막한 시간을 건너 우리 앞에 제출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릅니다. 우리는 말다툼을 하면서도 이것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여러분을 위해, 여러분의 신 아니라, 여러분 자신에게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도 기도할 것입니다. 송신합니다, 이것이 우주를 영원히 떠돌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도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고, 여전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것은 빛의 속도로, 아주 느리게, 여러분에게 가 닿을 것입니다. 그럴 것으로 믿습니다. 그런 날이 온다면 우리는 우리와 여러분을, c가 그랬던 것처럼 감히 우리라고 부를 것입니다. 우리가 비로소 우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왔습니다.

*

 “여러분, 이것은 실제상황입니다! 바로 지금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기자의 머리칼이 휘날린다. 옷깃이 펄럭여 기자의 뺨을 때린다. 옷깃 속에서 기자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떠들어댄다. 정신이 나간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기자의 앞에는 카메라를 든 사람, 기자의 뒤로는 지평선 끝까지 도시와 구름이, 죽은 바다와 그것의 반사광처럼 펼쳐져 있다. 그 사이에 형형색색의 광고 비행선들이 한 방향으로 떠 가고, 크거나 작은 비행기들은 그 주위를 어지럽게 선회하고 있다. 옥상마다 모인 사람들. 멀지 않은 곳 어디서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다. 건물에 가려 무엇이 불타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부상열차들이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도로 위에는 손톱만 한 미색 버스들이 줄지어 있다. 어두운 빛깔로 열을 이룬 이들과, 그들이 밀어내고 있는 사람들과, 사람들이 든 몇 개의 깃발이 넘어지는 것이 보인다.
 “저것이 별과 별 사이의 공간을 건너 왔을까요? 저것은 어디서 왔을까요? 보십시오, 최초입니다! 오오, 저것은…….”
 모든 인간과 인간의 것들이 프레임 아래로 빨려 들어간다. 저것은……. 그것은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

 늦은 밤까지 잠들지 않은 두 인간이 있다. 한 인간이 잠시 올리브색 쇳덩어리에 기대어 밖을 내다본다. 많은 별들이 창틀 안에 있다. 다른 인간이 별들의 무게를 묻는다. 미안하지만 자신은 알 수 없다고, 인간은 답한다. 너의 질문 어느 것도 나는 모르겠구나. 거듭, 인간의 일이 시작된다. 쇳덩어리가 덜덜거리며 천 조각들을 토해낸다. 한 인간은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 페달을 밟는다. 다른 인간은 실망하지 않는다. 아직 작은 손에 들린 감자를 바라보며,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도 어두운 것을 상상한다. 믿을 수 없는 것. 창밖에 암흑뿐이다. 그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