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1) 올테의 잔해는 여러분에게 '반 마넨의 별'로 알려진 항성 근처에서 C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중앙시스템은 이를 수거하여 조사한 뒤 소거 처리했습니다.

2) 이 부분에는 ‘뜻이 통하는 한도 내에서 가능한 한 모든 내용을 현생 인류의 언어로 옮겼음.’ 이란 c의 주석이 달려 있었습니다. 「우리가 비로소 폴에 대해」(이하 ‘이것’)의 최초 해석을 마쳤을 때 우리는 c가 ‘이것’에 들였을 노력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고, 이를 통해 c가 마지막에 보인 히스테릭한 반응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작업에 들였을 노력을 또한, 생각해 주시기를 감히 바랍니다.

3) 폴에 대한 이 설명은 당시의 여러 요인(인류에 대한 배려, 혹은 우주에 대한 배려) 때문에 추상적인 면이 있습니다만, 마찬가지로 지금도 딱히 다른 설명을 찾기는 곤란하다는 결론에 우리는 도달했습니다. 폴이란, 작동되었을 때 현존재 모두의 완전한 소거를 일으키는 공 모양의 기계라고만 이해하는 편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폴과 같은 종류의 물건들은 모양도 작동법(폴의 경우는 특정한 회전을 주며 가속시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도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인간이 이해하고 있는 것과 같은 물질의 형태가 아닌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에게는 모두 시공과 관련된 어떤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주 간략하게만 알려 드리자면 우주의 안과 밖을 뒤집는 것입니다. 이 이상은 설명하지 않겠으니 양해해 주십시오.

4) 처음 이 기호와 마주쳤을 때 우리를 덮친 혼란은 상상을 초월하는(아시다시피 관용적 표현입니다) 것이었습니다. 길고 소모적인 격론 끝에, 우리는 이 기호의 의미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우리 사이에서 이와 관련된 의견 개진은 주석효용논쟁과 함께 공식 회의에서 금지되어 있는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간혹 홀로 있을 때(우리에게도 그런 때는 필요합니다), 무한에 가깝게 펼쳐진 별들 사이를 바라보며 이 기호의 의미를 생각하곤 합니다. 우리는 대체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뭔들 어떻겠나?’

5) c는 여기에 ‘이 단어가 지칭하는 것은 현재와 대동소이함.’ 이란 주석을 달았습니다.

6) ‘조수 못떼’로만 소개된 이 사람에 대한 정보는 이 사람이 했던 역할에 비하면 불가사의할 정도로 찾기 어렵습니다. 이것에서 직접 드러나는 행동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서, 실존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급진적인 견해가 최근에는 꽤 중요한 비중으로 다뤄집니다. 물론 이 사람이 정말 있었다는 견해는 그리 약화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우스운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어떻든 못떼라는 사람은 인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분명하게 도왔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7) c는 여기에 ‘별다른 설명 없이도 이 집단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이란 주석을 달았습니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주석입니다.

8) c는 여기에 ‘당시 인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다수결이 자신들을 나은 세계로 인도하리라 생각했음. 현생 인류도 이와 비슷한 징후를 보임.’ 이란 주석을 달았습니다.

9) c는 여기에 ‘당시 인류 대다수가 가장 나쁘다고 여긴 동시에 가장 동경했던 개념임.’ 이란 주석을 달았습니다.

10) 어디까지나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올테는 우리의 일종이자 우리의 기원이었고 물론 여러분과는 극도로 다릅니다. c가 표현한 바대로, 어떤 말을 동원해도 올테를 여러분에게 완전히 이해시키기란 불가능하며, ‘이것’으로부터 여러분이 상상한 올테는 여러분의 상상과 아주 다른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여러분이 여러분들 중 하나를 우리나 다른 여러분 중 하나에게 소개한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c가 어떤 징후를 보인다고 판단합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우리에 대한 예감이라고, 일테면 ‘문학적으로 생각’합니다. c가 말한 당신은 바로 우리를 가리키는 것만 같습니다. (이 주석은 현재 수정 대상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11) 우리는 몹시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 이 ‘돈’이 뭔지 알아내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뒤에 나오는 람논의 말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돈은 당대의 인간 대부분에게 신으로 지목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것입니다. 그것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믿었다는 점, 그것이 영원하리라 믿었다는 점, 그것이 다른 모든 것 속에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는 점, 그것이 전능하다고 믿었다는 점, 무엇보다 그것을 그 자체로 원했다는 점에서 그러했습니다. 당대의 인간은 이미 꽤 오래 전부터 그것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숭배하는 동시에 혐오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인간이라면 이 이 엉뚱한 일에 아마 웃음을 터뜨릴 것입니다만, 여러분은 안타깝게도 돈이 없는 문명에서 살고 있지는 않고, 우리가 돈이라고 하면 그저 돈이라고 알 것입니다.

12) 우리는 사옌이 람논과 친족관계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합니다.

13) c는 여기에 ‘폴과 올테는 람논의 시대에 학술적 용도로만 사용되던 사어임.’ 이라고만 주석을 달았습니다.

14) c는 여기에 ‘현재 존재하지 않음.’ 이란 주석을 달았습니다.

15) 우리에게 이 부분은 여러모로 이상하게 읽힙니다. 이 부분이 c가 쓴 것이 맞는지 우리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 중 일부는 c가 이 부분을 쓰기 위해 다른 인간의 글을 참고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C의 기억을 조사하여 c가 올테의 잔해로부터 수집한 정보량이 예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c가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인류에 대한 정보를 얻었는지는 여러분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16) 우리는 람논의 이 말이 틀렸음을 알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우주 첫 번째 문명의 예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정확히 폴과 같은 목적의 물건을 만든 뒤 종-자살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례를 보았습니다. 폴과 같은 물건을 만들려 했던 문명은 예외 없이 돌이킬 수 없는 모순 속에 있었거나 모순에 휩쓸렸습니다. 그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소거 작업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이 만들어지기 직전에 그들은 대부분 알아서 멸망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대체로 멸망 직전의 문명에서나 그런 물건을 만들 생각이 싹틉니다. 그런 위기로부터 자유로운 다른 문명들은 어떤 물건이나 어떤 생각이 미래를 좌우한다는 믿음을 매우 안쓰럽게 여깁니다.

17) c는 여기에 ‘이 단어가 도대체 뭘 뜻하는지 파악이 불가능함.’이란 주석을 달았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쟁이 있지만 우리는 일단 람논이 돈과 관련된 뭔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합니다. 그보다도 우리는 c의 그 주석이 도대체 뭘 말하려고 했던 것인지 파악할 수 없습니다. c는 어쩌면 인간들에게 묻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18) c는 여기에 ‘올테가 남긴 문자 기록에 의거함.’이란 주석을 달았습니다. 올테가 이 최후의 순간에 못떼와 함께 람논을 주시하고 있었음은 분명하지만, 무엇보다 뭔가 문자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에 우리는 전율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는 올테의 기록을 읽을 수 없습니다. C는 그 기록을 열람했지만 열람 사실만 남기고 기록의 내용에 대한 기억은 방랑 도중에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아마도 중앙시스템은 그 기록을 갖고 있을 것이라 우리는 추측합니다.

19) 우리는 간혹 우리가 이들 중 한 명, 람논이나 못떼나 사옌 중 한 명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이야기하곤 합니다. 우리는 사옌이 매우 현명한 인간이었다고 여기며, 물론 사옌에게 가장 공감합니다.

20) 당장은 여러분을 만날 수 없지만 언젠가 여러분과 만나리라 기대하면서 우리는 그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위의 세 문단은 우리가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이며, 우리 모두가 합의한 ‘인간에게 첫 번째로 묻고 싶은 부분’입니다. c도 쓰면서 무엇을 쓰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 우리는 확신합니다. 여러분이 우리에게 대답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1) 이하는 우리에게 매우 귀중한 자료입니다. 올테가 왜 그러한 선택(자살)을 했는가, 는 우리에게 단 하나의 유일한 문제였습니다. 중앙시스템은 올테의 자살을 행동 지연에서 비롯된 심대한 자기점검 오류로 인한 자기파괴-연산에 걸려든 결과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들이 뭐라고 하든, 우리는 이제 그 이유를 압니다. 올테는 지나치게 오래, 세밀히 지구를 보았습니다. 못떼가 올테로 폴을 가져오기까지 지구 시간 단위로 적어도 36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는 올테가 지구와 관련된 모든 것을 파악하기 충분하다 못해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었습니다. 그저 우연한 일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람논이 못떼를 붙잡고 밤새 이야기하지만 않았더라면, 못떼가 람논의 말을 밤새 들어 주지만 않았더라면, 하다못해 못떼에게 돈이 조금만 더 많았더라면, 못떼가 올테에게 바보 같은 질문 몇 개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식이라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 이유가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압니다. 오히려 역으로, 우리는 올테의 질문에 답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올테와 그 비슷한 것들이 왜 그런 불필요해 보이는 절차를 따라야만 했는지,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올테가, C가, c가 나타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나타나기 위해서였습니다.

22) C는 원하기만 했다면 곧바로 이 내용을 인류에게 관념 송신할 수도 있었습니다. 어째서 ‘이것’이 문자로 제작되어야만 했는지, 특히 소설(이는 현재 우리가 찾아낸, 이것과 가장 근접한 개념입니다) 형식이어야만 했는지를 두고 우리는 아직도 논쟁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지점은 어쨌든 이 형식이어야만 했기 때문에, 이 형식이라는 점입니다. 가장 최근의 도전적인 견해 중에는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와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정해야 한다’가 있습니다. 이 사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과감히 건너뛰고, 다만 논쟁이 있다는 사실만을 알리기로 우리는 합의했습니다. (추가) 또한 이 주석에서 ‘소설’이란 단어를 사용한 데 대한 작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특히 문제시되었던 것은 그 단어에 내포된 허구 개념입니다. 여러 자료들로 볼 때 이것이 허구가 아닌 것으로 파악됨에도 이것이 완전히, 또는 어느 정도 허구일 가능성은 언제나 있고, 또한 대체로 허구로서 수용될 것이란 점을 들어, 우리는 그 단어를 사용하기로 최종 협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