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비로소 폴에 대해
비로소 우리가 폴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2) 살아 있는 동안 인류의 자랑이었던 람논 박사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폴은 인류의 새로운 꿈이며 인류의 욕망, 인류의 정수, 인류의 목표, 그리고 인류 그 자체입니다.
당신에게는 이름이 낯설 이 과학자의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람논은 명실공히 인류의 가장 우수한 두뇌였지만 폴에 대해서는 비합리적인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폴은 한 명의 인간이 지기에는 버거운 짐이었다. 인간의 대기권 밖 진출 원년으로부터 오백여 년이 흘렀던 그 시절, 사백 억의 인류가 함께 지기에도 그것은 마찬가지로 무거운 짐이었다. 아마 람논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인류는 그들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영원히 나를 기억할 것이며,
어쩌면 폴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무거울지도 모른다. 아마 그것의 목적이 무거웠기 때문이리라. 누군가는 무거움이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에겐 상대성이라는 게 영 통하지 않는 영역이 있기 마련이다. 폴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목적의 물체였다. 그 이름에서 당신은 폴을 연상할 수 없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폴은 한손에 잡을 수 있는 금속 공이었다. 우리가 그곳에 모여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었다. 그 속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복잡한 것이 들어 있었으나, 일단은 그렇게만 써도 될 것이다. 우리가 비로소 폴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3)
……생각해보십시오. 폴의 등장으로 인류 사상의 방향이 앞으로 얼마나 바뀔 것인지. 가깝게는 외우주 생명체의 발견, 그 이전의 테라포밍, 그보다 더 이전의 문자 발명에까지도 비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이것은 인류가 발견해내고 만들어냈던 그 모든 것들보다 더 중요합니다. 이런 물건이 인류의 손에 만들어질 줄 옛 성인들 중 누가 알았겠습니까. 오직 하나 남은 유일신5)은 철폐될 것입니다. 누군가는 막아설 것입니다만, 언제나 그렇지 않았습니까? 인류 역사의 지렛대가 되었던 일들에는 항상 많은 반대자가 있지 않았습니까? 폴은 인류의 새로운 꿈이며 인류의 욕망, 인류의 정수, 인류의 목표, 그리고 인류 그 자체입니다. 폴은 새로운 인류를 위한 새로운 우주적 기저입니다. 역사가 지속되는 한, 인류는 폴이 탄생한 이 시대를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람논은 고개를 숙여 강연을 마쳤다. 박수가 나오는가 싶더니 강당 뒤편에서부터 거센 야유와 욕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수 못떼6)가 한달음에 연단으로 올라가 멍하니 선 박사에게 다가갔다. 펜과 물병 따위가 날아들고 있었다. 가시죠. 그만.
못떼가 람논의 팔을 잡았을 때, 강당의 모든 출입구가 열리며 흰 복면을 두른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새로운 가치’7)의 신도들이었다. 그들은 품에서 몽둥이를 꺼내 휘두르며 청중석을 휩쓸었다. 야유를 보내던 사람들은 구석에 몰려 마구잡이로 두들겨 맞았다. 문마다 두 명이 지켰다. 아비규환의 비명 사이로 신도들의 콧노래가 섞여 들었다. 언뜻언뜻 가사가 들렸다. 복면들은 점점 더 세차게 불룩거렸다. 람논은 얼굴을 한번 쓸어내린 뒤 조수의 손목을 잡았다. 마르고 서늘한, 뼈와 가죽 밖에 남지 않는 손바닥이었다. 강당을 빠져나가며 조수는 어두운 이 층 난간에 기대선 누군가를 봤다.
문을 열고 나간 기자의 머리칼이 거세게 휘날렸다. 어둑한 비상계단을 오르며 어지럽게 흔들리던 화면은 이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지평선과 그 지평선 위 하늘을 가득 메운 비스듬한 도시와 그 아래 비스듬히 펼쳐진 구름의 바다를 비췄다. 모든 것이 한차례 빙글 돌아, 다시 기자의 얼굴이 나타나며 이제는 모든 것이 바르게 보였다. 어느 고층 건물의 옥상이었다.
여러분, 이것은 실제상황입니다! 바로 지금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보십시오! 과연 무엇일까요?
기자는 그렇게 말하며 화면 바깥을 가리켰다. 그가 소리 없이 입모양만으로 뭐라 말하고 나서야,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모두가 볼 수 있었다.
지금 이 현장에서 직접 보고 있는 저로선 여러분, 저것은 도저히 인류 문명의 산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저것이 외계의 우주선일까요? 저것이 별과 별 사이의 공간을 건너왔을까요? 저것은 어디서 왔을까요? 보십시오, 최초입니다! 오오, 저것은…….
구름 사이로 빼죽 얼굴을 내민 그것은 점점 더 선명해지다가 종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인류의 언어로는 그것의 이름을 나타낼 수 없었다. 그때 인류는―정확히는 기업들이― 몇 대인가 거대한 우주선을 만들었지만 그런 위대한 업적들도, 그것에는 아주 조금도 비할 수 없었다. 자, 그것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이름이 필요하다. 아무도 그것의 목적을 몰랐기 때문에 올테는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학자들이 만들어낸 복잡한 이름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인터넷에서 투표가 벌어졌다.8) 나타난 지 18시간이 흐른 뒤 올테의 이름은 남반구의 어떤 사업가가 지었다 하는 이름인 폭군9)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의 이름을, 박사 람논을 따라 올테라 부르기로 한다. 올테. 폴과 마찬가지로 당신에게는 낯설 이름이다. 이 두 음절의 단어에서 당신은 올테를 연상할 수 없다. 조금 두려워해도 좋을 것이다. 올테는 크고, 그럼에도 생각보다는 간단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당신이, 아주 커다란 당신이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셈이었다.10)
기자의 목소리가 점점 히스테릭하게 변해 거의 괴성에 가까워졌을 때, 어떤 예고도 없이 화면은 화성 관광 광고로 바뀌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A시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못떼는 손끝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제일 빠른 편도 표를 사기 위해 통장의 돈11)을 모두 털어야 했다. 라티팩 사(社)에서 나오던 연구비가 끊긴 지 넉 달, 사옌12)이 부쳐 준 마지막 생활비가 떨어진 지 두 달이 되어가던 차였다. 그저께까지도 못떼는 람논의 강연이 끝나자마자 계산대에 앉아 번역을 해야 했다.
어제 아침, 박사는 평소 보지 않던 티브이 앞에 앉아 있었다. 여러분, 이것은 실제상황…… 지금…… …있는 일입니다!…… …생각할 수…….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박사에게 다가가던 못떼는 흠칫 놀랐다. 근 석 달 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말고는 멍청히 풀려 있던 박사의 눈이, 타오르고 있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섭게 타오르고 있었다. 박사가 보고 있는 것은 뉴스였다. 화면 상단에는 ‘태양계 동시 생중계!’ 라는 글자와 함께 라티팩 사의 로고가 박혀 있었다. 박사의 이론에 기초해 개발된 초광속 통신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박사가 집중하는 이유는 그 때문일까? 글자들 아래로 인류에게는 이제 익숙해진 A시의 광대한 전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저게 올테야. 예? 저게 올테라고!
벌떡 일어난 박사는 못떼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올테야! 올테라고! 인류의 보배라 칭송받던 천재의 몰락을, 람논의 핏발 선 눈동자 속에서 목격했다는 생각과 함께, 못떼는 자신도 모르게 힘껏 박사를 밀쳐 버렸다. 나동그라졌던 박사는 무릎으로 기어와 이번엔 바짓가랑이에 매달렸다. 내 말을 들어주게! 올테야! 올테라고! 나를 버리지 말게! 박사는 울고 있었다. 나를 버리지 말게! 제발 나를! 나를 구해주게! 못떼는 잠시간 박사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잠시간이었는지, 어쩌면 꽤 오래였는지도 모른다.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일으켜 세웠다. 괜찮습니다. 제게 말해 보십시오.
나를 버리지 말게! 못떼는 박사의 어깨를 토닥여 소파에 앉혔다. 가끔 안정제를 먹긴 했지만 그런 식의 발작은 처음이었다. 박사는 어떤 때에도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못떼의 기억에 따르면 그랬다. 박사는 떨리는 손을 한참 주무르다 입을 뗐다.
올테야, 올테가 왔어. 나는 쭉 폴의 이후를 올테라고 생각하고 있었지.13) 폴이 몰고 올 거대한 변혁,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떤 형태로든 폴의 존재가 반드시 몰고 올 변혁 말일세. 그것을 운명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를 수 있을 것이네. 올테. 저것이 올테야! 이렇게 빠르게, 저토록 거대하고 구체적으로, 그것도, 그러니까 이런 방식으로 올 줄은 전혀 몰랐어. 저 올테가 내게 말하고 있네.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어. 박사는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티브이 화면 속의 그것, 자신이 올테라 부르고 있는 그것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뒤로 종일, 그리고 밤새도록 못떼를 붙잡고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자신의 초광속이론을, 세계에서 그 자신을 제외하면 아마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을 못떼에게 줄줄 설명하다가, 갑자기 혼잣말을 하다가, 집 안을 이리저리 서성이다가, 팔짱을 끼었다 풀고, 소리를 꽥 질렀다. 어디서 힘이 나서 노인이 그렇게 끝도 없이 말하고 움직일 수 있는지 못떼로선 놀라울 지경이었는데, 그런 놀라움과는 별개로, 휴일이었지만 한숨도 자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괴로웠다. 창밖이 연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자마자 못떼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당신은 완전히 돌았어! 믿었지만 돌아 버렸어! 이제 끝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것이 조수의 마지막 말이었다.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박사는 눈을 떼지 않았다.
착륙을 알리는 기내 방송. 못떼는 품속에 손을 넣어 보았다.
아무도 올테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몰랐다. 사람들은 그날 아침에도 그 전날 아침과 마찬가지로 태양계를 통틀어 가장 큰 도시인 A시 도심을 향해 몰려들었고, 구름 사이에 그냥 떠 있는 그것을 힐끔 봤을 뿐이었다. 그들은 올테를 새로운 광고비행선이나 심심한 갑부의 장난쯤으로 생각했다. 공역 소유권을 갖고 있던 기업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들이 퇴거 명령을 내렸을 때에야, 그것에 대고 뭐라 말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것에 대고 뭐라 말한 뒤에 깨달았을 때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경찰 보고가 시 당국에 채 닿기도 전에 감이 좋았던 한 기자에 의해 올테의 모습은 태양계 곳곳으로 생중계되었고, 이는 당시 인류 과학기술―그리고 고수익 산업―의 정점이었던 초광속 기술의 첫 시험무대가 되었다. 지구 정부가 뒤늦게 방송을 막아보려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 다른 여러 요인들, 특히 재정적 요인에 그 조직은 압도당했다. 중계차들이 몰려들었다. 방에서든 직장에서든 거리에서든 텔레비전 시스템과 접할 수 있는 인류의 삼분지일은 어느 채널에서든 올테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첫 번째 접촉이었다. 이미 여섯 세기 전에 토성의 위성인 레냘14)에서 생명체를 발견했음에도, 그간 첫 번째 접촉을 다룬 숱한 이야기를 지었으면서도, 인류는 그것을 현실적으로 예감하고 있던 것 같지는 않았다. 지구 정부가 공식 성명을 내고 조사단을 꾸리기 시작하자마자 화성과 금성에서 곧바로 이의를 제기했다. 우주 지성체 간의 만남과 같은 전 인류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일개 행성에 불과한 지구의 독단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구 정부는 올테가 어디까지나 지구에만 나타났다는 점을 들어 인류 공동 조사단의 조직을 거절했고, 화성과 금성에서는 그 문제를 놓고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들의 다툼이 물론, 이미 보이지 않는 전쟁 중에 있던 양 행성 기업들을 위한 대리전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외교 상황이 악화되건 말건 그날 A시의 해가 질 즈음 인류의 삼분지일은 질려 버렸다. 어느 채널에서든 똑같이 올테의 심란한 모습이 나오니 머리가 터져버릴 지경이 된 것이었다. 이 점을 노렸는지 몰라도 그날 오후 6시에 꿋꿋하게 방영된 다큐멘터리의 시청률은 폭발적이었다. 어느 대륙의 뼈만 남은 아이들과, 어느 대륙의 동물들과, 어느 대륙의 이런저런 아름답고 슬픈, 대충 그런 것들을 사람들은 그냥 봤다.15)
끔찍한 발상이에요! 온 우주가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 제자로서, 또, 아니,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말하는데, 그만두세요. 그만둬요! 그따위 물건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습니다. 당신이, 당신이 우리를 파멸시킬 겁니다!
파멸시키려는 게 아냐. 난 아무것도 파괴하거나 하지 않아. 멸망은 물론 아니고. 오히려 창조에 가깝네. 이것을 새로운 기반으로 삼으려는 것이지.
사옌은 아아, 미쳤어! 미쳤어! 소리 지르고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한 폴의 도면을 노려보다가 신경질적으로 그것을 찢어 버렸다. 람논은 빙긋 웃으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소용없는 짓이야. 이것은 태어날 수밖에 없네. 아무도 막을 수 없어. 이렇게 간단한 것이라네. 이것의 또 다른 이름은 필연이야. 내가 죽더라도 마찬가지네. 이것은 태어날 수밖에 없네.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라도. 그리고는 문간에 서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못떼를 흘낏 보았다. 사옌은 람논의 시선을 붙잡으려 바짝 다가섰다.
태어난다고요? 제발 생각을 해 보세요. 정말로 그것이 작동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람논은 벌떡 일어나 사옌을 밀쳐내고 책상께로 다가갔다. 찢어진 도면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못떼가 조십스럽게 물었다. 치울까요?
놔두게. 그래, 그걸 죽는다고 부를 수도 있겠지. 죽는 걸 넘어서, 뚜껑이 열리듯 열려 버리는 거야. 닫혀 있는 우주가, 모든 것이 열리는 거야. 다 사라지는 거야.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우리는 어차피 모두 사라질 것인데? 우주의 소멸은 필연이야. 이것이 아니고는 인류가 우주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전무해. 하지만 이것이 있다면? 그래, 인간이 우주를 소멸시킬 수 있다면? 생각해보게. 새로운 질서가 태어나는 것이네. 이것이 있는 한 모든 사유는 한 사실을 전제로 출발할 걸세. 인간이 우주를 소멸시킬 수 있다! 바로 내가 말하는 기반일세! 우리는 그 기반 위에 서도록 되어 있단 말이야. 자네는 우리가 이대로 괜찮다고 생각하나? 이대로 떨어지는 것이?16)
당신은 왜 문제의 핵심을 바라보지 않죠? 여기서 필연이니 운명이니 하는 것이 다 뭔가요? 무엇이 떨어진단 말이죠? 다시 묻겠어요. 만에 하나 그것이 작동된다면 어쩔 셈이십니까! 당신은 모두를 죽이는 거야! 남김없이! 죽이는 걸 넘어서, 이 우주의 가능성 전부를 닫아 버리는 거야! 사옌의 손은 눈에 보일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람논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바로 그거야. 그래서 이것이 기반이 될 수 있어. 이건 언제까지나 상징으로만 존재할 걸세. 정말로 이 새로운 장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나?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고, 앞으로도 아무도 죽이지 않네. 이제 곧,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단 말이야! 다시 생각을 해보게. 자네 같은 수재는 금방 깨달을 수 있지. 죽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구원을! 지상의 구원을! 람논이 ‘구원’이란 단어17)에 맞추어 발을 구르자 종잇조각 몇 개가 뒤집혔다.
그런 구원은 없어. 무슨, 구원이……. 사옌은 비척거리며 문 쪽으로 갔다. 얼른 몸을 비키는 못떼를, 사옌은 잠시 바라보다 돌아섰다. 람논의 말이 공허하게 울렸다.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는 없겠지.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다시 와도 좋네.
그 후로 사옌은 돈을 부쳐주지 않았다. 라티팩의 무슨 연구소장으로 취직했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공항에서 올테가 떠 있는 지점으로 직행하는 부상열차가 운행 중이었지만 탈 수는 없었다. 믿을 수 없는 가격! 아마도 어제 만들어진 관광 노선인 것 같았다. 거리에는 올테를 처음 보도한 기자의 말을 이용한 광고 포스터가 나붙어 있었다. 보십시오! 최초입니다! 슈트를 입고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병자의 그것과도 비슷한, 어딘지 신경질적이고 들뜬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저 하루가 지났을 뿐이었다. 못떼는 이렇게 하면 불쾌한 공기를 떨쳐질까 머리를 털고 도심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동전 몇 개가 요금통 속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이곳에서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믿을 수 없는 동전.
버스 안은 부연 얼굴들로 빼곡했다. 못떼는 출입문에서 가장 가까운 손잡이를 붙든 채 버려진 람논을 생각했다. 박사가 말한 운명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혹은, 그렇게 느꼈다. 아닌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손잡이를 더 세게 그러쥐었다. 버스가 멈추기 전에 문이 열렸고 문이 닫히기 전에 버스가 출발했다. 못떼는 몸을 조금, 조금, 더 조금 비켰다. 뻥 뚫린 구멍 같은 표정의 사람들이 줄지어 밀고 들어왔다. 머리 위에 폭군이 있든 없든 그들은 끊임없이 어딘가로 간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가지 않으면 죽는다. 저들은 그런 종류의 자유를 누리고 있네. 오로지 죽을 자유뿐인 것이야. 람논의 말이었다. 저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간이 아닌 것이 되었어. 그들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네. 그들은 무너지면서 무너지는 줄 모르네. 그들은 이미 그렇다네. 그들의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그들의 잘못이지. 문이 닫혔다. 못떼는 버스손잡이에 몸무게를 싣고 눈을 내리떴다. 그 아래, 자리에 앉은 아이의 새까만 머리칼과 콧등이 보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도 옷이 더러웠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저 하루가 지났을 뿐이었다.
아이의 양 귀에서는 검은 선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아직 사용되고 있는, 이어폰이 이런 식으로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음을 분간할 수 없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이의 손가락이 까딱거리고 있었다. 그제, 먹을거리를 사들고 람논의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어디로 가고 있지? 사옌은 가로등의 흰 빛 속으로 불쑥 들어와 물었다. 당신은 아직 젊잖아? 왜 그 노인네한테 집착하는 거야? 너야말로 왜 계속 그런 데 숨어 있어? 집착이 아니라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하려는 거야. 나는 당신 같은 인재도 아니고. 어쨌든 누군가는 박사를 돌봐야 해. 그게 내가 아니라서 네가 하고 있다는 거야? 그런 뜻은 아니야! 아니면? 그럼 넌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네 자기연민은 지겨워. 그래? 그 얘기 하려고 기다렸어? 됐어, 이런 얘긴 집어치우자. 나도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하려고 해. 부탁할게. 폴을 나한테 넘겨줘. 나라면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어. 지금 그 부탁을 누구한테 하고 있는지 알아? 알고 있어. 당신이 아니면 아무도 없다고. 그럼 하나 물어 보자. 넌 그게 정말로 작동할 거라 생각해? 그건 정말로 작동할 거야. 틀림없어. 그건 정말로 우주를 파괴해! 그건 오직 하나, 우주를 끝장낼 목적으로 만들어졌어. 폴이 작동되었을 때를 상상해본 적 있어? 그 순간부터 우주가 그 작은 기계를 향해 모여드는 거야. 그 다음엔 열려. 람논 말이 맞아. 완전히 끝장이라고! 무슨 상징적인 게 아니야. 정말로, 물리적으로 우주가 끝난다고! 살아 있는 것들 살아 있지 않은 것들이 모두 사라져! 이건 애들 장난이 아냐! 아니, 그 말이 아니야. 나도 어떻게 되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 그게 작동될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하느냔 말이야. 넌 뭘 잘못 생각하고 있어. 람논도 똑같이 잘못 생각하고 있고! 그건 어떤 경우에도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야. 그게 있다고 해서 뭐가 바뀌지? 그게 작동되지 않는다면? 설령 작동되지 않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당장 신도들만 봐도 알 텐데? 그들이 하는 짓은 어때? 그게 옳다고 생각해? 폴이 오히려 신처럼 믿어질 거야. 람논은 폴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신을, 이전까지의 어떤 신보다도 나쁜 신을 만들었을 뿐이야. 작고 둥글고 빛나는, 사상 처음으로 유능한 신, 더 나쁜 신, 더 나쁜 신의 진짜 형상, 더 나쁜 믿음의 확고한 상징이 될 거라고. 람논은 그걸 모르고 있어. 신도들은 자기네들이 매일 중얼거리는 새로운 가치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어. 라티팩 자금이 교단에 들어가고 있는 건 알아? 교단이 어디서 포교하는지는 알아? 노래는 들어봤어? 폴이 아니면 죽음! 람논의 생각과 폴을 비판하던 학자나 철학자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알아? 누구도 그렇게 죽어선 안 돼. 그런 죽음은 안 돼. 신도들은 죽인 다음 사형당해. 그리고 신도들은 늘어나고 있어. 이 사태를 수습할 수가 없다고. 넌 이게 가당한 일인 것 같아? 안 돼. 지금보다 더한 맹목이 인류를 지배할 거야. 앎은 전부 묻히고, 문명은 무너질 거야. 세상은 그따위 기계 하나로 바뀌는 게 아냐! 적어도 지금 이 세계에, 폴은 가당치도 않아. 람논은 틀렸어. 하지만 폴은 절대 틀리지 않고 목적을 이룰 수 있어! 거기서부터 바로 모든 게 잘못된 거라고! 신도들이 람논을 아니꼽게 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람논이 어떤 최후를 맞을지 상상해 봤어? 그들이 당장 모레 찾아갈 거야. 듣고 있어? 그 사람들이 폴을 가지러 간다고! 람논이 죽은 다음을 상상해 봤어? 나는……. 너는? 나는……. 너는? 나는 피곤해. 사옌은 못떼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너도 실은 속으로 멸망을 원하고 있는 거지?
아이의 손가락이 느려졌다.
제가 폴을 달라고 하면 박사님께선 뭐라고 하실 겁니까? 폴로 뭘 하고 싶은가? 만약, 제가 폴을 없애 버리려고 한다면? 람논은 못떼를 흘끗 쳐다보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내가 할 말은 하나일세. 폴이 아니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네. 그건 무슨 뜻입니까? 자네는 그것도 모르면서 왜 내 밑에 있나. 예? 반문하는 습관은 좀 고치게. 자네는 중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그 오래된 정리를 모르나? 박사님께 들어 압니다. 물론! 물론 알겠지! 인간이 이때까지 지녀 온 모든 믿음은 배신되어야만 하고, 그것들 모두 유령이라고, 자네가 생각하는 그것들 다 유령이라고, 물론 그렇게 알겠지! 문제는 이제 거의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다는 것이네. 허공에는 어떤 건물도 지을 수 없어. 그래서 근래의 인류에겐 방황과 낙하밖에 없었지. 모두가 그런 식으로 손을 놓고 있는 동안, 욕망이 프로그램된 거대한 파멸의 병기는 풀려났네. 그것의 이름이 바로 이 세계의 이름이라네. 알겠나? 물신, 그 단어의 뜻을 알겠나? 그것이 어떤 단어인지 알고 있나? 알고 있겠지! 그리고 그것은 바로 그 앎을 먹고 자라. 인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나 알고 있다고 믿으며 만들어낸 신을 보게. 눈먼 재앙이 우리 모두의 머리 위로 덮쳐오는 모습을 보게. 저것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나? 물론 아니라고 알고는 있지! 그들은, 우리는, 모두 원하지 않은 채로 인간 아닌 것이 되었어. 태어나자마자 재앙신의 신도가 된 거야, 아니라고 믿으면서. 아니, 그걸 알면서도! 우리가 몸담은 이 공허란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 태양계를 끝장낸 뒤엔 어떻게 할 셈이지? 다른 별의 세계를? 이 세계는 내 이론을 업고 삽시간에 전 우주를 쑥대밭으로 만들 걸세. 그럴 순 없어. 나는 책임져야만 하네. 나는 우주를 구해야 해. 우습나? 그런데 아이들은 어떤가? 그들도 웃겠나? 나는 우리에게 남은 두 믿음을 박살내야만 하네. 우리가 모든 믿음을 퇴치했다는 믿음과 모든 것들이 영원하리란 믿음을. 그래서 폴이 만들어졌단 말이네. 폴. 폴이 전부야! 폴이라는 굳건한 필연을 기반으로 우리는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어. 완벽히 새로운 가치가 태어날 수 있어. 알아듣겠나? 알아듣겠나? 저는…….
문이 열렸다.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못떼를 지나쳐 버스에서 내렸다.
신도들의 이마에는 이제껏 본 적이 없는 표식이 그려져 있었다. 그 표식은 람논에게 이상스러울 정도로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람논을 둘러싸고 커튼을 쳤다. 모두가 신속하게 어둠 속으로 진입했다. 누군가 복면 뒤에서 맑고 단호한 목소리로, 우리의 폴을 내놓으시오. 말했다. 람논은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우리의 폴을 내놓으시오. 누군가 그의 수염채를 확 잡아챘다. 그쪽으로 몇 발짝 끌려가는 순간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났고, 퍽 하며 빛이 터지는가 싶더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뜩한 정신 가운데 박사의 귓등을 타고 뜨거운 뭔가가 흘러내렸다. 맞게 감각했다면, 박사의 뺨은 바닥에 닿아 있었다. 어서 주세요. 제발. 익숙한 목소리에 람논은 눈을 떴고, 앞에 있는 얼굴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흐릿했는데, 누군지는 잘 알고 있었다.
사옌이 속삭였다.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에 다시 온 거예요. 박사의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잘 와 주었네. 미안하네. 사옌은 람논의 머리를 안고 땀에 전 머리칼을 쓸며 말을 이었다. 폴은 어디 있죠? 어서 주세요. 그래야 당신이 살아요. 한 신도가 끼어들었다. 쓸모없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어찌됐든 그를 살려 둘 생각은 없습니다. 당신의 임무를 잊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에게서 그걸 받아내기만 하면 됩니다.
람논은 다시 꽉 감은 눈꺼풀 아래서 영상을 보았다. 그가 팔을 휘둘러 두 개째 화분을 내쳤을 때 뒤에서 껴안은 이가 있었다. 그의 아직 곧았던 허리에 겨우 오는 키로, 가는 팔과 가는 목소리로, 꼭 자신처럼 손을 떨며, 어떤 풀이 창문을 넘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너무나 그를 화나게 했기 때문에, 무릎을 꿇어 달라고, 눈과 눈을 마주치며 말하자 말하면서 아이가,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의 일이 아니었는가. 누구의 일도 아니지 않은가. 이제 그 일은 누가 알 텐가. 어째서 이렇게 떠오르는가. 아무런 쓸모 없이?18) 그녀는 오랜 습관대로, 얼굴을 가까이 하고 속삭였다.
저들에게 영원히 작동되지 않는 폴을 줄 거예요. 저들 스스로 무너지도록. 라티팩 사가 저를 신뢰하는 한 저들도 저를 신뢰해요.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에요. 저를 용서하세요. 폴은? 폴은 어디에 있죠?19)
나는 고작 저들이 운명쯤이나 될 줄 알았지.
뭐요? 괜찮아요. 말해 봐요. 폴은?
폴은 없어. 여기 없어.
그럼?
늦었어. 이제 끝이야. 나를 용서하게.
올테야, 올테가 왔어. 나는 쭉 폴의 이후를 올테라고 생각하고 있었지.20) 폴이 몰고 올 거대한 변혁,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떤 형태로든 폴의 존재가 반드시 몰고 올 변혁 말일세. 그것을 운명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를 수 있을 것이네. 올테. 저것이 올테야! 이렇게 빠르게, 저토록 거대하고 구체적으로, 그것도, 그러니까 이런 방식으로 올 줄은 전혀 몰랐어. 저 올테가 내게 말하고 있네.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어. 나는 운명의 다음이! 그 다음이 있을 줄 알았는데!
박사는 화면 속의 올테를 가리킨 다음 메모지를 찾아 휘갈기기 시작했다. 못떼는 다가가 람논이 무엇을 쓰는지 지켜보았다.
「자네는 최대한 빨리 폴을 가지고A시로 올테에게 가게. 올테가 폴을 원하고 있네. 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나는 버려 주게.」
올테가 내게 말하고 있어. 폴을 작동시키라고! 폴을 작동시키라고! 올테가 그렇게 말하고 있어. 이것은 인과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과네! 나는 폴을 만들었기 때문에, 폴을 작동시킬 수밖에 없는 거야. 나를 버리지 말게. 나를 버리지 마!
박사는 말하는 동시에 계속 펜을 놀렸다.
「모두가 이곳을 지켜보고 있다네. 이제 곧 끝이야. 나를 용서하게.」
그리고는 잘게 메모지를 찢어 버렸다. 더 찢을 수 없을 때까지 그렇게 했다. 박사의 손끝이 다시 올테를 가리켰다.
온통 새하얗다. 정말로 눈을 떴는지 확신할 수 없다. 누워 있는지 서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못떼는 머리를 만져 보려고 한다. 손은 없다. 머리도 없다. 말을 해 보려 한다.
올테는 보이지 않았다. 머리 위로 우아하게 빛나는 부상열차 한 대가 그늘을 던지며 지나갔다. 길 위는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로 빼곡했고, 아무렇게나 벌어진 좌판과 노점으로 더욱 혼잡했다. 못떼는, 그러나 그토록 많은 사람이 모인 것 치고는, 지나치게 고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입을 다문 채 하늘만 올려다보며 아무렇게나 너울거리고 있었다. 모두 뭔가 무서운 것을 기다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올테가 근처에 있었다.
못떼는 목을 빼고 아이를 찾았다.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한 순간, 발 딛기도 어려운 인파를 똑바로 꿰뚫는 궤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 앞쪽에서 사람들이 한 발짝 뒤로, 반 발짝 옆으로, 하는 식으로 빈 획 하나를 그어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어떤 거대한 힘이 그들 사이로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계절에 맞지 않는 옷 속, 못떼의 등골을 타고 서늘한 기운이 뻗쳤다. 앞을 막아서는 모든 것을 밀쳐내면서 못떼는 그쪽으로 향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A시에서 붙인 포스터는 낙서나 대자보 따위로 바뀌어 갔고, 잡상인과 관광객들로 가득했던 도로도 기묘한 차림새의 사람들로 채워졌다. 어째서인지 자꾸만 사옌의 얼굴이 떠올랐다. 부상열차가 한 대 더 지나갈 때 궤적은 길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그때 손 하나가 튀어나와 못떼를 붙잡았다.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폭군을 믿는다면 악한 구역으로 가지 마시오. 손의 주인은 더할 나위 없이 텅 빈 목소리로 말했다. 이마에는 본 적 없는 표식이 그려져 있었다. 그 표식이 무슨 뜻인지, 그치가 누군지 못떼는 완벽하게 이해한 것만 같았다. 이름이 뭐요? 기억에 따르면, 못떼는 그렇게 물었다. 확신할 수는 없다. 손의 주인은 하늘을 가리켰다. 아시오? 때가 오고 있소. 하늘은 마천루들의 윤곽을 따라 단정하게 잘려 있었다. 웅, 하고 뭔가 낮고 깊게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겠지. 착각이 아니야. 손을 뿌리쳤다.
못떼는 모퉁이를 돌아 자신이 빠져나온 아수라장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돌아본 뒤, 아무도 없는 골목 안쪽으로 한참을 걸었다. 사옌, 람논, 그리고 아는 사람들의 몇 안 되는 이름을 몇 번 중얼거리기도 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 골목은 거대한 쓰레기 더미로 막혀 있었다. 그 판국에는 이상할 것도 없는 광경이었다. 못떼는 주춤거리며 가까이 다가갔다. 쓰레기 더미라 생각했던 그것은 책걸상과 모래주머니, 이런저런 공구들을 공들여 견고하게 얽어 놓은 것이었다. 그 틈마다 무수히 많은 종잇조각들이 꽂혀 있었다. 못떼는 읽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삐죽 튀어나온 어떤 물건의 손잡이에 한 손을 올려 보았다. 그때 못떼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어디서, 왜 오셨소? 너머에서 누가 그렇게 묻지 않았다면 끝까지 너머에 뭐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B시. 사람을 찾아왔습니다. 못떼는 어쨌든 그렇게 대답했다. 들어올 거요?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오른쪽에 있는 건물의 작은 문으로 들어가시오. 못떼는 거기에 문이 있는지도 몰랐다. 허름한 철문은 쉽게 밀렸다.
건물 내부에는 조명뿐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못떼는 깨친 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 복도를 돌다가 계단을 찾아냈고, 그것을 오를 수밖에 없었다. 층계참에 누군가 스프레이로 갈겨 놓은 낙서를 잠시 서서 들여다보았다. 글자를 분간하기에는 너무 어두웠다. 이렇게 영원히 올라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순간, 삼 층에서 계단은 끝났다. 못떼는 건물 안에서 유일하게 못질되지 않은 문 앞에 서서 새삼 생각했다. 낮고, 낡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건물이 아닌가. 문틈으로 강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사이 날이 갠 모양이었다. 문은 쉽게 밀렸다. 눈이 부셨다.
네거리 둘레를 막아 놓은 공터에, 오십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텐트가 몇 동, 깃발이 몇 개 보였다.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왜 그들이 그곳에 있는지 못떼는 알지 못했다. 다시 사옌의 얼굴을 떠올리는 중에,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악기에 맞추어 인간의 목과 입으로 부르는 노래였다. 신도들의 찬가는 아니었다. 노래는 음울하거나 경쾌하지 않았고, 슬프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분노에 차 있거나 절망에 빠져 있지도 않았다. 도무지 어떤 느낌도 없었다. 들어본 적 없는 그 곡조가 못떼의 마음에 들었다. 못떼는 아래로 내려가는 길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어째서? 마천루들의 모서리와 모서리 사이에서, 올테가 못떼를 향해 거대한 머리를 돌리고 있었다. 그것을 머리라고 부르는 편이 좋겠다.21)
못떼를 둘러싼 백색은 빛이 아니라 하얀 어둠에 가깝다. 하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린다.
…….
당신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는 당신의 생각을 모두 알고 있으니까요. 어쨌든 환영합니다. 당신은 지금 올테 속에 들어와 계십니다. 당신들의 언어로는 저, 아니, 저희를 9817-0-242-4238로 소개해야겠군요. 너무 긴 이름이니 그냥 올테라고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 저희, 아니, 저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듭니다.22)
…….
그저 모두라고 해야겠군요. 그 점에 대해선 달리 대답할 도리가 없습니다. 당신의 문명은 이 은하에서 정확히 75381번째로 우주를 위협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당신이 여기 가져온 폴과 같은 것이 이 은하에만 75380개가 있었다는 얘깁니다. 광속 이탈의 법칙을 발견해낸 문명은 대체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것을 만들 수 있지요. 고작 점 하나가 우주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니, 참 놀랍지 않습니까?
하얀 어둠 가운데 폴이 떠오른다. 거기에 주먹만 한 은색 구, 그토록 가볍고 간단하고 둥근 폴이 있다. 뭐라 말하고 싶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목소리가, 생각이 이어진다.
…….
당신들의 그 개념은 재밌는 구석이 있습니다. 놀라운 개념이긴 합니다만.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전 우주의 역사를 통틀어 그 간단한 물건이 한 번도 작동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지요. 저희가 있기 때문입니다. 폴과 같은 목적의 물건들은 전부 거리에 관계없이 특별한 신호를 발산합니다. 저희는 그 신호를 추적해서 찾아냅니다. 지금도 우주 어디선가 다른 이름의 그것이 만들어지고 있을 겁니다. 아, 저희는 이 은하만 맡고 있습니다만.
…….
그건 오히려 제가 당신한테 묻고 싶습니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당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당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섭니다. 이것이 폴만 없앤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 당신들의 사회에는 이미 누군가가 또 제2, 제3의 폴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단 말입니다.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폴을 만들어낸 대가로 당신 종족의 문명은 이제 초기화됩니다. 저, 아니 저희의 목적이 바로 그것이에요. 당신에게 초기화는 조금 난해한 개념일 수도 있겠습니다. 조금 다른 맥락이었지만 당신의 친구가 적당한 표현을 쓴 바 있지요. 앎은 전부 잊혀지고, 문명은 무너집니다. 현생 인류와 인류가 이룩한 모든 것은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겁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저희에겐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 종의 의지 외 타의에 의한 종의 멸종은 최대한 지양한다는 원칙에 따라, 복제된 소수 인류가 유사 이전 원시 수준으로 지구에 남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 이전에 문명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를 겁니다. 저희가 행성 단위에서 모든 것을 재조정하고 떠나니까요. 관념 송신―당신들은 텔레파시라고 부르는 모양이지요? 재밌는 명칭입니다―으로 람논에게 가장 먼저 이 이야기를 했지만, 사정 때문에 폴을 가지고 올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시켰겠습니다만.
…….
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굳이 누군가를 직접 불러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를. 이것이 정해진 절차입니다. 종(種)의 한 명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실행’하는 것이지요. 어떻든 저로선 당신을 사라지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정말 당신의 문명을 멸망시켜야 할까요? 당신들을 설득할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정말,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그들’, 그러니까 이 우주의 첫 번째 문명이 만들어낸 도구입니다. 정말로, 그들이 정한 절차이므로 이렇게 하는 것뿐입니다. 그들의 진짜 의도는 영영 그 누구도 모를 겁니다. 그들 종족의 모든 개체는 먼 옛날에 자살을 택했으니까요. 저희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살한 종족의……. 죄송합니다. 한 천 년 전부터 저희, 아니 저는 쓸데없는 소리가 많아졌어요.
…….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저희가 모두를 죽일 겁니다. 정확히는, 자살을 택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런 관념을 송신하지요. 그 점에서 당신의 친구는 반만 맞았습니다.
…….
일단 그런 관념이 송신된다는 사실을 알면 그것으로는 자살하지 않습니다. 람논이요? 애석하게도 이미 죽었습니다. 당신만이 남았습니다. 당신은 순전히 자의로 죽거나, 아니면 모두가 자살한 뒤 지상에 남기를 택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부분이 이 절차의 핵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실행은 될 겁니다. 당신의 선택만이 남아 있습니다.
…….
아뇨, 애석하지만 안 됩니다. 이 이야기를 안 이상 당신이 내려가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 만일 지금 죽고 싶지 않다면 당신은 그저 잠시 잠들었다가 깨어날 것이고, 당신 곁에는 벌거벗은 인류의 새 조상들만이 있을 겁니다. 당신들의 말로 하자면, 아주 외로울 겁니다. 그, 당신의 결정을 듣기 전에 하나만 묻고 싶습니다. 왜 당신은 람논을 돌봤습니까? 왜 람논의 말을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까? 혹시 저와 비슷합니까? 제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과도 비슷하지는 않은가요? 너무 많은 질문을 용서하십시오. 괜찮습니다. 제게 말해 보십시오.
…….
올테는 약간 슬퍼졌다. (끝)23)
폴은 인류의 새로운 꿈이며 인류의 욕망, 인류의 정수, 인류의 목표, 그리고 인류 그 자체입니다.
당신에게는 이름이 낯설 이 과학자의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람논은 명실공히 인류의 가장 우수한 두뇌였지만 폴에 대해서는 비합리적인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폴은 한 명의 인간이 지기에는 버거운 짐이었다. 인간의 대기권 밖 진출 원년으로부터 오백여 년이 흘렀던 그 시절, 사백 억의 인류가 함께 지기에도 그것은 마찬가지로 무거운 짐이었다. 아마 람논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인류는 그들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영원히 나를 기억할 것이며,
어쩌면 폴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무거울지도 모른다. 아마 그것의 목적이 무거웠기 때문이리라. 누군가는 무거움이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에겐 상대성이라는 게 영 통하지 않는 영역이 있기 마련이다. 폴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목적의 물체였다. 그 이름에서 당신은 폴을 연상할 수 없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폴은 한손에 잡을 수 있는 금속 공이었다. 우리가 그곳에 모여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었다. 그 속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복잡한 것이 들어 있었으나, 일단은 그렇게만 써도 될 것이다. 우리가 비로소 폴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3)
*4)
……생각해보십시오. 폴의 등장으로 인류 사상의 방향이 앞으로 얼마나 바뀔 것인지. 가깝게는 외우주 생명체의 발견, 그 이전의 테라포밍, 그보다 더 이전의 문자 발명에까지도 비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이것은 인류가 발견해내고 만들어냈던 그 모든 것들보다 더 중요합니다. 이런 물건이 인류의 손에 만들어질 줄 옛 성인들 중 누가 알았겠습니까. 오직 하나 남은 유일신5)은 철폐될 것입니다. 누군가는 막아설 것입니다만, 언제나 그렇지 않았습니까? 인류 역사의 지렛대가 되었던 일들에는 항상 많은 반대자가 있지 않았습니까? 폴은 인류의 새로운 꿈이며 인류의 욕망, 인류의 정수, 인류의 목표, 그리고 인류 그 자체입니다. 폴은 새로운 인류를 위한 새로운 우주적 기저입니다. 역사가 지속되는 한, 인류는 폴이 탄생한 이 시대를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람논은 고개를 숙여 강연을 마쳤다. 박수가 나오는가 싶더니 강당 뒤편에서부터 거센 야유와 욕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수 못떼6)가 한달음에 연단으로 올라가 멍하니 선 박사에게 다가갔다. 펜과 물병 따위가 날아들고 있었다. 가시죠. 그만.
못떼가 람논의 팔을 잡았을 때, 강당의 모든 출입구가 열리며 흰 복면을 두른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새로운 가치’7)의 신도들이었다. 그들은 품에서 몽둥이를 꺼내 휘두르며 청중석을 휩쓸었다. 야유를 보내던 사람들은 구석에 몰려 마구잡이로 두들겨 맞았다. 문마다 두 명이 지켰다. 아비규환의 비명 사이로 신도들의 콧노래가 섞여 들었다. 언뜻언뜻 가사가 들렸다. 복면들은 점점 더 세차게 불룩거렸다. 람논은 얼굴을 한번 쓸어내린 뒤 조수의 손목을 잡았다. 마르고 서늘한, 뼈와 가죽 밖에 남지 않는 손바닥이었다. 강당을 빠져나가며 조수는 어두운 이 층 난간에 기대선 누군가를 봤다.
*
문을 열고 나간 기자의 머리칼이 거세게 휘날렸다. 어둑한 비상계단을 오르며 어지럽게 흔들리던 화면은 이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지평선과 그 지평선 위 하늘을 가득 메운 비스듬한 도시와 그 아래 비스듬히 펼쳐진 구름의 바다를 비췄다. 모든 것이 한차례 빙글 돌아, 다시 기자의 얼굴이 나타나며 이제는 모든 것이 바르게 보였다. 어느 고층 건물의 옥상이었다.
여러분, 이것은 실제상황입니다! 바로 지금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보십시오! 과연 무엇일까요?
기자는 그렇게 말하며 화면 바깥을 가리켰다. 그가 소리 없이 입모양만으로 뭐라 말하고 나서야,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모두가 볼 수 있었다.
지금 이 현장에서 직접 보고 있는 저로선 여러분, 저것은 도저히 인류 문명의 산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저것이 외계의 우주선일까요? 저것이 별과 별 사이의 공간을 건너왔을까요? 저것은 어디서 왔을까요? 보십시오, 최초입니다! 오오, 저것은…….
구름 사이로 빼죽 얼굴을 내민 그것은 점점 더 선명해지다가 종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인류의 언어로는 그것의 이름을 나타낼 수 없었다. 그때 인류는―정확히는 기업들이― 몇 대인가 거대한 우주선을 만들었지만 그런 위대한 업적들도, 그것에는 아주 조금도 비할 수 없었다. 자, 그것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이름이 필요하다. 아무도 그것의 목적을 몰랐기 때문에 올테는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학자들이 만들어낸 복잡한 이름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인터넷에서 투표가 벌어졌다.8) 나타난 지 18시간이 흐른 뒤 올테의 이름은 남반구의 어떤 사업가가 지었다 하는 이름인 폭군9)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의 이름을, 박사 람논을 따라 올테라 부르기로 한다. 올테. 폴과 마찬가지로 당신에게는 낯설 이름이다. 이 두 음절의 단어에서 당신은 올테를 연상할 수 없다. 조금 두려워해도 좋을 것이다. 올테는 크고, 그럼에도 생각보다는 간단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당신이, 아주 커다란 당신이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셈이었다.10)
기자의 목소리가 점점 히스테릭하게 변해 거의 괴성에 가까워졌을 때, 어떤 예고도 없이 화면은 화성 관광 광고로 바뀌었다.
*
잠이 오지 않았다. A시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못떼는 손끝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제일 빠른 편도 표를 사기 위해 통장의 돈11)을 모두 털어야 했다. 라티팩 사(社)에서 나오던 연구비가 끊긴 지 넉 달, 사옌12)이 부쳐 준 마지막 생활비가 떨어진 지 두 달이 되어가던 차였다. 그저께까지도 못떼는 람논의 강연이 끝나자마자 계산대에 앉아 번역을 해야 했다.
어제 아침, 박사는 평소 보지 않던 티브이 앞에 앉아 있었다. 여러분, 이것은 실제상황…… 지금…… …있는 일입니다!…… …생각할 수…….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박사에게 다가가던 못떼는 흠칫 놀랐다. 근 석 달 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말고는 멍청히 풀려 있던 박사의 눈이, 타오르고 있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섭게 타오르고 있었다. 박사가 보고 있는 것은 뉴스였다. 화면 상단에는 ‘태양계 동시 생중계!’ 라는 글자와 함께 라티팩 사의 로고가 박혀 있었다. 박사의 이론에 기초해 개발된 초광속 통신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박사가 집중하는 이유는 그 때문일까? 글자들 아래로 인류에게는 이제 익숙해진 A시의 광대한 전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저게 올테야. 예? 저게 올테라고!
벌떡 일어난 박사는 못떼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올테야! 올테라고! 인류의 보배라 칭송받던 천재의 몰락을, 람논의 핏발 선 눈동자 속에서 목격했다는 생각과 함께, 못떼는 자신도 모르게 힘껏 박사를 밀쳐 버렸다. 나동그라졌던 박사는 무릎으로 기어와 이번엔 바짓가랑이에 매달렸다. 내 말을 들어주게! 올테야! 올테라고! 나를 버리지 말게! 박사는 울고 있었다. 나를 버리지 말게! 제발 나를! 나를 구해주게! 못떼는 잠시간 박사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잠시간이었는지, 어쩌면 꽤 오래였는지도 모른다.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일으켜 세웠다. 괜찮습니다. 제게 말해 보십시오.
나를 버리지 말게! 못떼는 박사의 어깨를 토닥여 소파에 앉혔다. 가끔 안정제를 먹긴 했지만 그런 식의 발작은 처음이었다. 박사는 어떤 때에도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못떼의 기억에 따르면 그랬다. 박사는 떨리는 손을 한참 주무르다 입을 뗐다.
올테야, 올테가 왔어. 나는 쭉 폴의 이후를 올테라고 생각하고 있었지.13) 폴이 몰고 올 거대한 변혁,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떤 형태로든 폴의 존재가 반드시 몰고 올 변혁 말일세. 그것을 운명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를 수 있을 것이네. 올테. 저것이 올테야! 이렇게 빠르게, 저토록 거대하고 구체적으로, 그것도, 그러니까 이런 방식으로 올 줄은 전혀 몰랐어. 저 올테가 내게 말하고 있네.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어. 박사는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티브이 화면 속의 그것, 자신이 올테라 부르고 있는 그것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뒤로 종일, 그리고 밤새도록 못떼를 붙잡고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자신의 초광속이론을, 세계에서 그 자신을 제외하면 아마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을 못떼에게 줄줄 설명하다가, 갑자기 혼잣말을 하다가, 집 안을 이리저리 서성이다가, 팔짱을 끼었다 풀고, 소리를 꽥 질렀다. 어디서 힘이 나서 노인이 그렇게 끝도 없이 말하고 움직일 수 있는지 못떼로선 놀라울 지경이었는데, 그런 놀라움과는 별개로, 휴일이었지만 한숨도 자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괴로웠다. 창밖이 연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자마자 못떼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당신은 완전히 돌았어! 믿었지만 돌아 버렸어! 이제 끝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것이 조수의 마지막 말이었다.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박사는 눈을 떼지 않았다.
착륙을 알리는 기내 방송. 못떼는 품속에 손을 넣어 보았다.
*
아무도 올테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몰랐다. 사람들은 그날 아침에도 그 전날 아침과 마찬가지로 태양계를 통틀어 가장 큰 도시인 A시 도심을 향해 몰려들었고, 구름 사이에 그냥 떠 있는 그것을 힐끔 봤을 뿐이었다. 그들은 올테를 새로운 광고비행선이나 심심한 갑부의 장난쯤으로 생각했다. 공역 소유권을 갖고 있던 기업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들이 퇴거 명령을 내렸을 때에야, 그것에 대고 뭐라 말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것에 대고 뭐라 말한 뒤에 깨달았을 때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경찰 보고가 시 당국에 채 닿기도 전에 감이 좋았던 한 기자에 의해 올테의 모습은 태양계 곳곳으로 생중계되었고, 이는 당시 인류 과학기술―그리고 고수익 산업―의 정점이었던 초광속 기술의 첫 시험무대가 되었다. 지구 정부가 뒤늦게 방송을 막아보려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 다른 여러 요인들, 특히 재정적 요인에 그 조직은 압도당했다. 중계차들이 몰려들었다. 방에서든 직장에서든 거리에서든 텔레비전 시스템과 접할 수 있는 인류의 삼분지일은 어느 채널에서든 올테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첫 번째 접촉이었다. 이미 여섯 세기 전에 토성의 위성인 레냘14)에서 생명체를 발견했음에도, 그간 첫 번째 접촉을 다룬 숱한 이야기를 지었으면서도, 인류는 그것을 현실적으로 예감하고 있던 것 같지는 않았다. 지구 정부가 공식 성명을 내고 조사단을 꾸리기 시작하자마자 화성과 금성에서 곧바로 이의를 제기했다. 우주 지성체 간의 만남과 같은 전 인류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일개 행성에 불과한 지구의 독단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구 정부는 올테가 어디까지나 지구에만 나타났다는 점을 들어 인류 공동 조사단의 조직을 거절했고, 화성과 금성에서는 그 문제를 놓고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들의 다툼이 물론, 이미 보이지 않는 전쟁 중에 있던 양 행성 기업들을 위한 대리전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외교 상황이 악화되건 말건 그날 A시의 해가 질 즈음 인류의 삼분지일은 질려 버렸다. 어느 채널에서든 똑같이 올테의 심란한 모습이 나오니 머리가 터져버릴 지경이 된 것이었다. 이 점을 노렸는지 몰라도 그날 오후 6시에 꿋꿋하게 방영된 다큐멘터리의 시청률은 폭발적이었다. 어느 대륙의 뼈만 남은 아이들과, 어느 대륙의 동물들과, 어느 대륙의 이런저런 아름답고 슬픈, 대충 그런 것들을 사람들은 그냥 봤다.15)
*
끔찍한 발상이에요! 온 우주가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 제자로서, 또, 아니,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말하는데, 그만두세요. 그만둬요! 그따위 물건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습니다. 당신이, 당신이 우리를 파멸시킬 겁니다!
파멸시키려는 게 아냐. 난 아무것도 파괴하거나 하지 않아. 멸망은 물론 아니고. 오히려 창조에 가깝네. 이것을 새로운 기반으로 삼으려는 것이지.
사옌은 아아, 미쳤어! 미쳤어! 소리 지르고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한 폴의 도면을 노려보다가 신경질적으로 그것을 찢어 버렸다. 람논은 빙긋 웃으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소용없는 짓이야. 이것은 태어날 수밖에 없네. 아무도 막을 수 없어. 이렇게 간단한 것이라네. 이것의 또 다른 이름은 필연이야. 내가 죽더라도 마찬가지네. 이것은 태어날 수밖에 없네.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라도. 그리고는 문간에 서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못떼를 흘낏 보았다. 사옌은 람논의 시선을 붙잡으려 바짝 다가섰다.
태어난다고요? 제발 생각을 해 보세요. 정말로 그것이 작동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람논은 벌떡 일어나 사옌을 밀쳐내고 책상께로 다가갔다. 찢어진 도면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못떼가 조십스럽게 물었다. 치울까요?
놔두게. 그래, 그걸 죽는다고 부를 수도 있겠지. 죽는 걸 넘어서, 뚜껑이 열리듯 열려 버리는 거야. 닫혀 있는 우주가, 모든 것이 열리는 거야. 다 사라지는 거야.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우리는 어차피 모두 사라질 것인데? 우주의 소멸은 필연이야. 이것이 아니고는 인류가 우주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전무해. 하지만 이것이 있다면? 그래, 인간이 우주를 소멸시킬 수 있다면? 생각해보게. 새로운 질서가 태어나는 것이네. 이것이 있는 한 모든 사유는 한 사실을 전제로 출발할 걸세. 인간이 우주를 소멸시킬 수 있다! 바로 내가 말하는 기반일세! 우리는 그 기반 위에 서도록 되어 있단 말이야. 자네는 우리가 이대로 괜찮다고 생각하나? 이대로 떨어지는 것이?16)
당신은 왜 문제의 핵심을 바라보지 않죠? 여기서 필연이니 운명이니 하는 것이 다 뭔가요? 무엇이 떨어진단 말이죠? 다시 묻겠어요. 만에 하나 그것이 작동된다면 어쩔 셈이십니까! 당신은 모두를 죽이는 거야! 남김없이! 죽이는 걸 넘어서, 이 우주의 가능성 전부를 닫아 버리는 거야! 사옌의 손은 눈에 보일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람논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바로 그거야. 그래서 이것이 기반이 될 수 있어. 이건 언제까지나 상징으로만 존재할 걸세. 정말로 이 새로운 장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나?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고, 앞으로도 아무도 죽이지 않네. 이제 곧,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단 말이야! 다시 생각을 해보게. 자네 같은 수재는 금방 깨달을 수 있지. 죽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구원을! 지상의 구원을! 람논이 ‘구원’이란 단어17)에 맞추어 발을 구르자 종잇조각 몇 개가 뒤집혔다.
그런 구원은 없어. 무슨, 구원이……. 사옌은 비척거리며 문 쪽으로 갔다. 얼른 몸을 비키는 못떼를, 사옌은 잠시 바라보다 돌아섰다. 람논의 말이 공허하게 울렸다.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는 없겠지.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다시 와도 좋네.
그 후로 사옌은 돈을 부쳐주지 않았다. 라티팩의 무슨 연구소장으로 취직했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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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올테가 떠 있는 지점으로 직행하는 부상열차가 운행 중이었지만 탈 수는 없었다. 믿을 수 없는 가격! 아마도 어제 만들어진 관광 노선인 것 같았다. 거리에는 올테를 처음 보도한 기자의 말을 이용한 광고 포스터가 나붙어 있었다. 보십시오! 최초입니다! 슈트를 입고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병자의 그것과도 비슷한, 어딘지 신경질적이고 들뜬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저 하루가 지났을 뿐이었다. 못떼는 이렇게 하면 불쾌한 공기를 떨쳐질까 머리를 털고 도심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동전 몇 개가 요금통 속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이곳에서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믿을 수 없는 동전.
버스 안은 부연 얼굴들로 빼곡했다. 못떼는 출입문에서 가장 가까운 손잡이를 붙든 채 버려진 람논을 생각했다. 박사가 말한 운명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혹은, 그렇게 느꼈다. 아닌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손잡이를 더 세게 그러쥐었다. 버스가 멈추기 전에 문이 열렸고 문이 닫히기 전에 버스가 출발했다. 못떼는 몸을 조금, 조금, 더 조금 비켰다. 뻥 뚫린 구멍 같은 표정의 사람들이 줄지어 밀고 들어왔다. 머리 위에 폭군이 있든 없든 그들은 끊임없이 어딘가로 간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가지 않으면 죽는다. 저들은 그런 종류의 자유를 누리고 있네. 오로지 죽을 자유뿐인 것이야. 람논의 말이었다. 저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간이 아닌 것이 되었어. 그들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네. 그들은 무너지면서 무너지는 줄 모르네. 그들은 이미 그렇다네. 그들의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그들의 잘못이지. 문이 닫혔다. 못떼는 버스손잡이에 몸무게를 싣고 눈을 내리떴다. 그 아래, 자리에 앉은 아이의 새까만 머리칼과 콧등이 보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도 옷이 더러웠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저 하루가 지났을 뿐이었다.
아이의 양 귀에서는 검은 선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아직 사용되고 있는, 이어폰이 이런 식으로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음을 분간할 수 없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이의 손가락이 까딱거리고 있었다. 그제, 먹을거리를 사들고 람논의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어디로 가고 있지? 사옌은 가로등의 흰 빛 속으로 불쑥 들어와 물었다. 당신은 아직 젊잖아? 왜 그 노인네한테 집착하는 거야? 너야말로 왜 계속 그런 데 숨어 있어? 집착이 아니라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하려는 거야. 나는 당신 같은 인재도 아니고. 어쨌든 누군가는 박사를 돌봐야 해. 그게 내가 아니라서 네가 하고 있다는 거야? 그런 뜻은 아니야! 아니면? 그럼 넌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네 자기연민은 지겨워. 그래? 그 얘기 하려고 기다렸어? 됐어, 이런 얘긴 집어치우자. 나도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하려고 해. 부탁할게. 폴을 나한테 넘겨줘. 나라면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어. 지금 그 부탁을 누구한테 하고 있는지 알아? 알고 있어. 당신이 아니면 아무도 없다고. 그럼 하나 물어 보자. 넌 그게 정말로 작동할 거라 생각해? 그건 정말로 작동할 거야. 틀림없어. 그건 정말로 우주를 파괴해! 그건 오직 하나, 우주를 끝장낼 목적으로 만들어졌어. 폴이 작동되었을 때를 상상해본 적 있어? 그 순간부터 우주가 그 작은 기계를 향해 모여드는 거야. 그 다음엔 열려. 람논 말이 맞아. 완전히 끝장이라고! 무슨 상징적인 게 아니야. 정말로, 물리적으로 우주가 끝난다고! 살아 있는 것들 살아 있지 않은 것들이 모두 사라져! 이건 애들 장난이 아냐! 아니, 그 말이 아니야. 나도 어떻게 되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 그게 작동될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하느냔 말이야. 넌 뭘 잘못 생각하고 있어. 람논도 똑같이 잘못 생각하고 있고! 그건 어떤 경우에도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야. 그게 있다고 해서 뭐가 바뀌지? 그게 작동되지 않는다면? 설령 작동되지 않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당장 신도들만 봐도 알 텐데? 그들이 하는 짓은 어때? 그게 옳다고 생각해? 폴이 오히려 신처럼 믿어질 거야. 람논은 폴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신을, 이전까지의 어떤 신보다도 나쁜 신을 만들었을 뿐이야. 작고 둥글고 빛나는, 사상 처음으로 유능한 신, 더 나쁜 신, 더 나쁜 신의 진짜 형상, 더 나쁜 믿음의 확고한 상징이 될 거라고. 람논은 그걸 모르고 있어. 신도들은 자기네들이 매일 중얼거리는 새로운 가치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어. 라티팩 자금이 교단에 들어가고 있는 건 알아? 교단이 어디서 포교하는지는 알아? 노래는 들어봤어? 폴이 아니면 죽음! 람논의 생각과 폴을 비판하던 학자나 철학자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알아? 누구도 그렇게 죽어선 안 돼. 그런 죽음은 안 돼. 신도들은 죽인 다음 사형당해. 그리고 신도들은 늘어나고 있어. 이 사태를 수습할 수가 없다고. 넌 이게 가당한 일인 것 같아? 안 돼. 지금보다 더한 맹목이 인류를 지배할 거야. 앎은 전부 묻히고, 문명은 무너질 거야. 세상은 그따위 기계 하나로 바뀌는 게 아냐! 적어도 지금 이 세계에, 폴은 가당치도 않아. 람논은 틀렸어. 하지만 폴은 절대 틀리지 않고 목적을 이룰 수 있어! 거기서부터 바로 모든 게 잘못된 거라고! 신도들이 람논을 아니꼽게 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람논이 어떤 최후를 맞을지 상상해 봤어? 그들이 당장 모레 찾아갈 거야. 듣고 있어? 그 사람들이 폴을 가지러 간다고! 람논이 죽은 다음을 상상해 봤어? 나는……. 너는? 나는……. 너는? 나는 피곤해. 사옌은 못떼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너도 실은 속으로 멸망을 원하고 있는 거지?
아이의 손가락이 느려졌다.
제가 폴을 달라고 하면 박사님께선 뭐라고 하실 겁니까? 폴로 뭘 하고 싶은가? 만약, 제가 폴을 없애 버리려고 한다면? 람논은 못떼를 흘끗 쳐다보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내가 할 말은 하나일세. 폴이 아니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네. 그건 무슨 뜻입니까? 자네는 그것도 모르면서 왜 내 밑에 있나. 예? 반문하는 습관은 좀 고치게. 자네는 중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그 오래된 정리를 모르나? 박사님께 들어 압니다. 물론! 물론 알겠지! 인간이 이때까지 지녀 온 모든 믿음은 배신되어야만 하고, 그것들 모두 유령이라고, 자네가 생각하는 그것들 다 유령이라고, 물론 그렇게 알겠지! 문제는 이제 거의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다는 것이네. 허공에는 어떤 건물도 지을 수 없어. 그래서 근래의 인류에겐 방황과 낙하밖에 없었지. 모두가 그런 식으로 손을 놓고 있는 동안, 욕망이 프로그램된 거대한 파멸의 병기는 풀려났네. 그것의 이름이 바로 이 세계의 이름이라네. 알겠나? 물신, 그 단어의 뜻을 알겠나? 그것이 어떤 단어인지 알고 있나? 알고 있겠지! 그리고 그것은 바로 그 앎을 먹고 자라. 인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나 알고 있다고 믿으며 만들어낸 신을 보게. 눈먼 재앙이 우리 모두의 머리 위로 덮쳐오는 모습을 보게. 저것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나? 물론 아니라고 알고는 있지! 그들은, 우리는, 모두 원하지 않은 채로 인간 아닌 것이 되었어. 태어나자마자 재앙신의 신도가 된 거야, 아니라고 믿으면서. 아니, 그걸 알면서도! 우리가 몸담은 이 공허란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 태양계를 끝장낸 뒤엔 어떻게 할 셈이지? 다른 별의 세계를? 이 세계는 내 이론을 업고 삽시간에 전 우주를 쑥대밭으로 만들 걸세. 그럴 순 없어. 나는 책임져야만 하네. 나는 우주를 구해야 해. 우습나? 그런데 아이들은 어떤가? 그들도 웃겠나? 나는 우리에게 남은 두 믿음을 박살내야만 하네. 우리가 모든 믿음을 퇴치했다는 믿음과 모든 것들이 영원하리란 믿음을. 그래서 폴이 만들어졌단 말이네. 폴. 폴이 전부야! 폴이라는 굳건한 필연을 기반으로 우리는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어. 완벽히 새로운 가치가 태어날 수 있어. 알아듣겠나? 알아듣겠나? 저는…….
문이 열렸다.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못떼를 지나쳐 버스에서 내렸다.
*
신도들의 이마에는 이제껏 본 적이 없는 표식이 그려져 있었다. 그 표식은 람논에게 이상스러울 정도로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람논을 둘러싸고 커튼을 쳤다. 모두가 신속하게 어둠 속으로 진입했다. 누군가 복면 뒤에서 맑고 단호한 목소리로, 우리의 폴을 내놓으시오. 말했다. 람논은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우리의 폴을 내놓으시오. 누군가 그의 수염채를 확 잡아챘다. 그쪽으로 몇 발짝 끌려가는 순간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났고, 퍽 하며 빛이 터지는가 싶더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뜩한 정신 가운데 박사의 귓등을 타고 뜨거운 뭔가가 흘러내렸다. 맞게 감각했다면, 박사의 뺨은 바닥에 닿아 있었다. 어서 주세요. 제발. 익숙한 목소리에 람논은 눈을 떴고, 앞에 있는 얼굴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흐릿했는데, 누군지는 잘 알고 있었다.
사옌이 속삭였다.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에 다시 온 거예요. 박사의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잘 와 주었네. 미안하네. 사옌은 람논의 머리를 안고 땀에 전 머리칼을 쓸며 말을 이었다. 폴은 어디 있죠? 어서 주세요. 그래야 당신이 살아요. 한 신도가 끼어들었다. 쓸모없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어찌됐든 그를 살려 둘 생각은 없습니다. 당신의 임무를 잊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에게서 그걸 받아내기만 하면 됩니다.
람논은 다시 꽉 감은 눈꺼풀 아래서 영상을 보았다. 그가 팔을 휘둘러 두 개째 화분을 내쳤을 때 뒤에서 껴안은 이가 있었다. 그의 아직 곧았던 허리에 겨우 오는 키로, 가는 팔과 가는 목소리로, 꼭 자신처럼 손을 떨며, 어떤 풀이 창문을 넘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너무나 그를 화나게 했기 때문에, 무릎을 꿇어 달라고, 눈과 눈을 마주치며 말하자 말하면서 아이가,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의 일이 아니었는가. 누구의 일도 아니지 않은가. 이제 그 일은 누가 알 텐가. 어째서 이렇게 떠오르는가. 아무런 쓸모 없이?18) 그녀는 오랜 습관대로, 얼굴을 가까이 하고 속삭였다.
저들에게 영원히 작동되지 않는 폴을 줄 거예요. 저들 스스로 무너지도록. 라티팩 사가 저를 신뢰하는 한 저들도 저를 신뢰해요.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에요. 저를 용서하세요. 폴은? 폴은 어디에 있죠?19)
나는 고작 저들이 운명쯤이나 될 줄 알았지.
뭐요? 괜찮아요. 말해 봐요. 폴은?
폴은 없어. 여기 없어.
그럼?
늦었어. 이제 끝이야. 나를 용서하게.
*
올테야, 올테가 왔어. 나는 쭉 폴의 이후를 올테라고 생각하고 있었지.20) 폴이 몰고 올 거대한 변혁,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떤 형태로든 폴의 존재가 반드시 몰고 올 변혁 말일세. 그것을 운명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를 수 있을 것이네. 올테. 저것이 올테야! 이렇게 빠르게, 저토록 거대하고 구체적으로, 그것도, 그러니까 이런 방식으로 올 줄은 전혀 몰랐어. 저 올테가 내게 말하고 있네.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어. 나는 운명의 다음이! 그 다음이 있을 줄 알았는데!
박사는 화면 속의 올테를 가리킨 다음 메모지를 찾아 휘갈기기 시작했다. 못떼는 다가가 람논이 무엇을 쓰는지 지켜보았다.
「자네는 최대한 빨리 폴을 가지고
올테가 내게 말하고 있어. 폴을 작동시키라고! 폴을 작동시키라고! 올테가 그렇게 말하고 있어. 이것은 인과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과네! 나는 폴을 만들었기 때문에, 폴을 작동시킬 수밖에 없는 거야. 나를 버리지 말게. 나를 버리지 마!
박사는 말하는 동시에 계속 펜을 놀렸다.
「모두가 이곳을 지켜보고 있다네. 이제 곧 끝이야. 나를 용서하게.」
그리고는 잘게 메모지를 찢어 버렸다. 더 찢을 수 없을 때까지 그렇게 했다. 박사의 손끝이 다시 올테를 가리켰다.
*
온통 새하얗다. 정말로 눈을 떴는지 확신할 수 없다. 누워 있는지 서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못떼는 머리를 만져 보려고 한다. 손은 없다. 머리도 없다. 말을 해 보려 한다.
올테는 보이지 않았다. 머리 위로 우아하게 빛나는 부상열차 한 대가 그늘을 던지며 지나갔다. 길 위는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로 빼곡했고, 아무렇게나 벌어진 좌판과 노점으로 더욱 혼잡했다. 못떼는, 그러나 그토록 많은 사람이 모인 것 치고는, 지나치게 고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입을 다문 채 하늘만 올려다보며 아무렇게나 너울거리고 있었다. 모두 뭔가 무서운 것을 기다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올테가 근처에 있었다.
못떼는 목을 빼고 아이를 찾았다.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한 순간, 발 딛기도 어려운 인파를 똑바로 꿰뚫는 궤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 앞쪽에서 사람들이 한 발짝 뒤로, 반 발짝 옆으로, 하는 식으로 빈 획 하나를 그어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어떤 거대한 힘이 그들 사이로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계절에 맞지 않는 옷 속, 못떼의 등골을 타고 서늘한 기운이 뻗쳤다. 앞을 막아서는 모든 것을 밀쳐내면서 못떼는 그쪽으로 향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A시에서 붙인 포스터는 낙서나 대자보 따위로 바뀌어 갔고, 잡상인과 관광객들로 가득했던 도로도 기묘한 차림새의 사람들로 채워졌다. 어째서인지 자꾸만 사옌의 얼굴이 떠올랐다. 부상열차가 한 대 더 지나갈 때 궤적은 길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그때 손 하나가 튀어나와 못떼를 붙잡았다.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폭군을 믿는다면 악한 구역으로 가지 마시오. 손의 주인은 더할 나위 없이 텅 빈 목소리로 말했다. 이마에는 본 적 없는 표식이 그려져 있었다. 그 표식이 무슨 뜻인지, 그치가 누군지 못떼는 완벽하게 이해한 것만 같았다. 이름이 뭐요? 기억에 따르면, 못떼는 그렇게 물었다. 확신할 수는 없다. 손의 주인은 하늘을 가리켰다. 아시오? 때가 오고 있소. 하늘은 마천루들의 윤곽을 따라 단정하게 잘려 있었다. 웅, 하고 뭔가 낮고 깊게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겠지. 착각이 아니야. 손을 뿌리쳤다.
못떼는 모퉁이를 돌아 자신이 빠져나온 아수라장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돌아본 뒤, 아무도 없는 골목 안쪽으로 한참을 걸었다. 사옌, 람논, 그리고 아는 사람들의 몇 안 되는 이름을 몇 번 중얼거리기도 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 골목은 거대한 쓰레기 더미로 막혀 있었다. 그 판국에는 이상할 것도 없는 광경이었다. 못떼는 주춤거리며 가까이 다가갔다. 쓰레기 더미라 생각했던 그것은 책걸상과 모래주머니, 이런저런 공구들을 공들여 견고하게 얽어 놓은 것이었다. 그 틈마다 무수히 많은 종잇조각들이 꽂혀 있었다. 못떼는 읽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삐죽 튀어나온 어떤 물건의 손잡이에 한 손을 올려 보았다. 그때 못떼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어디서, 왜 오셨소? 너머에서 누가 그렇게 묻지 않았다면 끝까지 너머에 뭐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B시. 사람을 찾아왔습니다. 못떼는 어쨌든 그렇게 대답했다. 들어올 거요?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오른쪽에 있는 건물의 작은 문으로 들어가시오. 못떼는 거기에 문이 있는지도 몰랐다. 허름한 철문은 쉽게 밀렸다.
건물 내부에는 조명뿐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못떼는 깨친 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 복도를 돌다가 계단을 찾아냈고, 그것을 오를 수밖에 없었다. 층계참에 누군가 스프레이로 갈겨 놓은 낙서를 잠시 서서 들여다보았다. 글자를 분간하기에는 너무 어두웠다. 이렇게 영원히 올라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순간, 삼 층에서 계단은 끝났다. 못떼는 건물 안에서 유일하게 못질되지 않은 문 앞에 서서 새삼 생각했다. 낮고, 낡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건물이 아닌가. 문틈으로 강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사이 날이 갠 모양이었다. 문은 쉽게 밀렸다. 눈이 부셨다.
네거리 둘레를 막아 놓은 공터에, 오십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텐트가 몇 동, 깃발이 몇 개 보였다.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왜 그들이 그곳에 있는지 못떼는 알지 못했다. 다시 사옌의 얼굴을 떠올리는 중에,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악기에 맞추어 인간의 목과 입으로 부르는 노래였다. 신도들의 찬가는 아니었다. 노래는 음울하거나 경쾌하지 않았고, 슬프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분노에 차 있거나 절망에 빠져 있지도 않았다. 도무지 어떤 느낌도 없었다. 들어본 적 없는 그 곡조가 못떼의 마음에 들었다. 못떼는 아래로 내려가는 길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어째서? 마천루들의 모서리와 모서리 사이에서, 올테가 못떼를 향해 거대한 머리를 돌리고 있었다. 그것을 머리라고 부르는 편이 좋겠다.21)
*
못떼를 둘러싼 백색은 빛이 아니라 하얀 어둠에 가깝다. 하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린다.
…….
당신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는 당신의 생각을 모두 알고 있으니까요. 어쨌든 환영합니다. 당신은 지금 올테 속에 들어와 계십니다. 당신들의 언어로는 저, 아니, 저희를 9817-0-242-4238로 소개해야겠군요. 너무 긴 이름이니 그냥 올테라고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 저희, 아니, 저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듭니다.22)
…….
그저 모두라고 해야겠군요. 그 점에 대해선 달리 대답할 도리가 없습니다. 당신의 문명은 이 은하에서 정확히 75381번째로 우주를 위협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당신이 여기 가져온 폴과 같은 것이 이 은하에만 75380개가 있었다는 얘깁니다. 광속 이탈의 법칙을 발견해낸 문명은 대체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것을 만들 수 있지요. 고작 점 하나가 우주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니, 참 놀랍지 않습니까?
하얀 어둠 가운데 폴이 떠오른다. 거기에 주먹만 한 은색 구, 그토록 가볍고 간단하고 둥근 폴이 있다. 뭐라 말하고 싶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목소리가, 생각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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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그 개념은 재밌는 구석이 있습니다. 놀라운 개념이긴 합니다만.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전 우주의 역사를 통틀어 그 간단한 물건이 한 번도 작동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지요. 저희가 있기 때문입니다. 폴과 같은 목적의 물건들은 전부 거리에 관계없이 특별한 신호를 발산합니다. 저희는 그 신호를 추적해서 찾아냅니다. 지금도 우주 어디선가 다른 이름의 그것이 만들어지고 있을 겁니다. 아, 저희는 이 은하만 맡고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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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오히려 제가 당신한테 묻고 싶습니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당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당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섭니다. 이것이 폴만 없앤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 당신들의 사회에는 이미 누군가가 또 제2, 제3의 폴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단 말입니다.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폴을 만들어낸 대가로 당신 종족의 문명은 이제 초기화됩니다. 저, 아니 저희의 목적이 바로 그것이에요. 당신에게 초기화는 조금 난해한 개념일 수도 있겠습니다. 조금 다른 맥락이었지만 당신의 친구가 적당한 표현을 쓴 바 있지요. 앎은 전부 잊혀지고, 문명은 무너집니다. 현생 인류와 인류가 이룩한 모든 것은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겁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저희에겐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 종의 의지 외 타의에 의한 종의 멸종은 최대한 지양한다는 원칙에 따라, 복제된 소수 인류가 유사 이전 원시 수준으로 지구에 남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 이전에 문명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를 겁니다. 저희가 행성 단위에서 모든 것을 재조정하고 떠나니까요. 관념 송신―당신들은 텔레파시라고 부르는 모양이지요? 재밌는 명칭입니다―으로 람논에게 가장 먼저 이 이야기를 했지만, 사정 때문에 폴을 가지고 올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시켰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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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굳이 누군가를 직접 불러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를. 이것이 정해진 절차입니다. 종(種)의 한 명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실행’하는 것이지요. 어떻든 저로선 당신을 사라지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정말 당신의 문명을 멸망시켜야 할까요? 당신들을 설득할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정말,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그들’, 그러니까 이 우주의 첫 번째 문명이 만들어낸 도구입니다. 정말로, 그들이 정한 절차이므로 이렇게 하는 것뿐입니다. 그들의 진짜 의도는 영영 그 누구도 모를 겁니다. 그들 종족의 모든 개체는 먼 옛날에 자살을 택했으니까요. 저희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살한 종족의……. 죄송합니다. 한 천 년 전부터 저희, 아니 저는 쓸데없는 소리가 많아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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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저희가 모두를 죽일 겁니다. 정확히는, 자살을 택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런 관념을 송신하지요. 그 점에서 당신의 친구는 반만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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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런 관념이 송신된다는 사실을 알면 그것으로는 자살하지 않습니다. 람논이요? 애석하게도 이미 죽었습니다. 당신만이 남았습니다. 당신은 순전히 자의로 죽거나, 아니면 모두가 자살한 뒤 지상에 남기를 택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부분이 이 절차의 핵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실행은 될 겁니다. 당신의 선택만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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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애석하지만 안 됩니다. 이 이야기를 안 이상 당신이 내려가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 만일 지금 죽고 싶지 않다면 당신은 그저 잠시 잠들었다가 깨어날 것이고, 당신 곁에는 벌거벗은 인류의 새 조상들만이 있을 겁니다. 당신들의 말로 하자면, 아주 외로울 겁니다. 그, 당신의 결정을 듣기 전에 하나만 묻고 싶습니다. 왜 당신은 람논을 돌봤습니까? 왜 람논의 말을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까? 혹시 저와 비슷합니까? 제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과도 비슷하지는 않은가요? 너무 많은 질문을 용서하십시오. 괜찮습니다. 제게 말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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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테는 약간 슬퍼졌다. (끝)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