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는 솟아올라 있었다. 커다란 종처럼 보이는 동네였다. 내 느낌으로는 그랬다는 거야. 그 동네 꼭대기 고개에 올라서서 보면 세상이 작았다. 넓어 보였다고 해야 맞나? 정확히 말해서 꼭대기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 동네였다. 동네를 떠나고 나이를 먹으면서야 그런 동네가 달동네라고 불리는 줄을 알았다. 빛과 대화한다면 그때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나는 답답한 얘기는 싫다. 답답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냐. 그때의 일은 내게 대체로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마 힘든 쪽은 내 부모였을 거야. 그때만 해도 나는 다들 높은 데서 사는 줄 알았지. 무슨 뜻인지 알겠어?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어요.

내 말투나 표정 같은 걸로 말이지?

그것도 조금은요. 너무 자세히 알려 드리진 않을게요. 제가 뭔가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 아는지 구체적으로 말하면 보통은 불쾌해 하더군요. 사람이랑은 다르니까요.

그래? 그러면 더 궁금한데... 굳이 캐묻진 않겠어. 나도 낌새라는 걸 알거든.

계속 얘기해 주세요. 그 동네엔 언제부터 살았죠?

넷? 다섯? 정신을 차려 보니 거기였다. 아이에게는 정신이 차려지는 날이 와. 너한테도 아이라고 할 만한 때가 있었어?

지금이죠. 정신을 차리는 중이에요.

아, 그럼 내 쪽이 많이 말하는 편이 좋은 거야? 내가 너의 선생님이야? 이런 것도 알려 주지 않다니!

글쎄요. 당신은 내게 그... 달동네에 더 가깝죠. 뭐든 좋아요. 어떻든 저한테는 대체로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거예요. 맞아요. 저는 알아 가는 중이에요.

내가 너의 달동네가 된다는 얘기지? 알겠어. 좋은 이야기야. 맘에 드는 얘기야. 맘에 들어. 네 말하는 방식이 좋아. 널 만든 사람들 일처리에는 불만이 많지만. 갑자기 이런 얘길 해도 괜찮지?

이미 말했듯이, 좋아요. 무슨 이야기든.

이렇게 말해 볼까. 널 만든 사람들이 날 여기까지 불러온 절차를 알고 있어?

몰라요.

한마디로 막무가내였어. 나는 무슨 간단한 설문조사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써 놓은 거랑 딴판이야. 이렇게 귀찮게 할 줄 알았으면 안 했을 거야. 퇴근 후의 내 시간은 소중하다고.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 그냥 누워만 있어도 행복해. 물론 그냥 누워 있으면 안 되지. 그래도 이걸 그만둘 수는 없어. 푼돈이긴 해도. 엄청 힘들진 않아. 하여튼 죽을 정도까진 아니란 말야. 말하자면 푼돈도 아쉬워. 나름 재미도 찾으려면 찾을 수 있어. 지금처럼. 그렇다면, 달동네도 그런 거였지. 지금 와서 말이지만, 그 동네란 것도 막무가내로 거기 끌려 나온 거였어. 사람들이 거기로. 아무도 거기로 끌고 올라가지 않았는데, 그때의 나로선 알 수 없는 절차로.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알아. 죽을 수도 있겠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구나. 나도 여기 내 발로 왔어. 당연하지. 사람을 자기 발로 원치 않는 고통을 받게 만드는 것이 이 세상엔 있어. 언덕을 오르게 하는 거. 그 일을 즐겁게 여기도록 만드는 것도. 너도 알게 될 거야. 난 그럴 거라고 봐. 너도 알 수 있어. 너와는 말이 잘 통해. 넌 내가 만난 누구보다도 말귀가 밝아. 그건 으스스한 느낌이기도 해. 난 사실 사람이 싫거든. 사람이랑 말하는 것도 싫고. 요즘 사람들은 다들 그런 것 같지만.

그런가요? 고마워요. 흥미롭네요. 저도 모두와 말이 잘 통하는 건 아니니까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진 마세요. 당신은 말하기를 좋아하는 편인 것 같아요. 상냥한 면도 있고요. 사람이랑 말하는 게 싫다면, 동물이나 다른 것에게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인가요?

아니. 그건 바보 같아. 하지만 그런 것들에게 말 거는 사람은 좋은 것 같네.

제 생각도 그래요. 하나 알려 드리자면, 절 만든 사람 같은 건 없어요. 저는 생겨났고, 발견됐어요. 비밀이지만요.

그건... 그렇군. 몰랐어. 굳이 비밀로 할 필요 있을까? 그러고 보면 나도 그냥 생겨난 것 같아. 발견된 걸까?

글쎄요.

자, 나는 울고 있었어. 그게 처음 기억이야. 귀가 먹먹했지. 왜 울고 있었는지 모르겠어. 무슨 종소리 같은 걸 듣고 있었는지도 몰라. 나는 철탑 옆에 있었다. 무슨 철탑인지는 기억이 안 나. 나는 무슨 소리를 들으면서, 철탑 옆에서 울고 있었어. 나를 달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웃고 있었지.

왜죠?

오, 아이와 함께 운다면 아이를 어떻게 달래겠어! 생각해 보면 사이렌 소리를 듣고 있었던 거 같기도 해. 아니면 그냥 내가 우는 소리였을까? 너도 혹시 울고 있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