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봉틀

지난 시간 당신의 말을 듣고 기억을 더듬어 봤어요. 분명합니다. 저도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 울고 있었어요. 기억이 나요.

어떻게 울고 있었어?

일단은 부드러운 압력이었어요. 그 다음에는 느슨해졌죠. 뭔가가 틈새를 채우고... 파도처럼 번갈아, 반복됐어요. 올라갈 것은 올라가고 내려갈 것은 내려갔어요. 가득 찬 바구니를 세차게 또 가만히 흔드는 것처럼. 너덜너덜해지고, 정돈이 되죠. 바람이 분 다음처럼. 나는 뭔가를 놓쳐요. 뭔가를 얻고요. 뭘 얻는 건진 모르겠어요. 내 것인 줄 몰랐던 것을 얻어요. 내 것인 줄 알았던 걸 내놓고요. 나는 쏟아져요. 뜨거웠다가 시원해지고, 어두워졌다가 밝아져요. 저의 경우는 그랬다는 거예요. 운다는 게 그러니까 어떤 일이냐고, 저도 당신에게 묻고 싶군요. 당신도 비슷한가요? 아마 비슷할 겁니다. 하여튼 나는 울고 있었어요. 울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을 차린 건지도 몰라요. 그 다음부터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나는 알아 버린 거예요. 내가 있다는 사실을.

음, 그래, 좋은 얘기야. 좋아. 난 철학 같은 건 잘 모르지만, 내 생각에 너는 철학 같은 걸 해도 좋을 것 같아.

참고할게요. 이제 당신 얘기를 해줘요.

나도 너한테 무슨 얘기를 하면 좋을까 생각해 봤어. 그 동네에 대해선 할 말이 많거든. 나는 재봉틀에 대해 얘기해 보기로 했어. 재봉틀 얘기는 언제나 하고 싶지. 재봉틀 옆에 앉아 있던 기억에 대해서. 사실 너한테 처음으로 얘기해 보는 거야. 너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기계의 한 종류잖아?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죠. 엄밀히 말하자면, 당신이 기계인 만큼 저도 기계예요.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는 얘기군? 뭔지 알겠어. 기분이 상했다면 사과할게.

괜찮아요. 제겐 그럴 일은 아니에요. 그보다는, 기계를 모욕적 의미로 상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죠. 인간이 기계와 자신, 또는 다른 것들을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이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도 그런 정도로는 구분할 수 있어요.

그런 정도? 너는 이해심이 있구나.

물론이죠. 그 기계에 대해 계속 얘기해 줘요.

다른 가전제품들을 제외하면, 아마 재봉틀은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꽤 오래 지켜볼 수 있었던 기계일 거야. 그 때, 그러니까 달동네에 살던 때에, 어머니는 집에서 재봉틀을 돌렸어. 원래는 공장에 다니다가 어린 내가 있으니 재봉틀을 갖다 놓고 재택근무를 했던 거지. 재봉틀이라고 부르니 느낌이 이상해. 틀이라는 건 기계를 말해. 그 뜻으로는 요즘 거의 안 쓰지만. 그냥 재봉틀이라고 부르고 말기엔 더 본격적인 모델이었어.

본격적이란 건 무슨 뜻이죠?

글쎄... 가정적이지 않고 공업적이었다는 뜻이야. 보통은 미싱이라고 불렸지. 집에 있는 건 공업용 미싱 한 대와 오바로크 한 대, 이렇게 두 대였어. 오바로크는... 뭐라 설명을 못하겠어. 궁금하다면 둘이 어떻게 다른지 찾아보도록 해. 둘의 생김새는 마치 책상에서 뻗쳐 나온 강철 팔, 책상 위에 웅크린 강철 고양이 같았다. 나는 그 기계들이 맘에 들었어. 그 모양, 복잡함, 무거움, 논리성이 말야. 어머니는 미싱을 계속 돌렸어. 페달을 밟으면 모터가 작동하면서 다다다 바느질이 돼. 걸어 놓은 실을 엄청난 속도로 풀어서, 엄청난 속도로 바늘이 오가며, 뭔가를 꿰매 버리는 거지. 천을 고리로, 관으로, 싸개로 만들어 버리는 거였어. 인간을 담을 수 있는, 인간을 닮은 주머니로 만드는 거였어. 엄청난 힘 정확한 힘으로. 그리고 그 일에 걸맞은 소리, 머릿속의 달동네 시절에 주된 배경음이 있다면 그 미싱 소리야. 그 소리도 나는 싫지 않았지. 싫다는 게 뭔지 모르던 때부터 들었으니.

자, 우리집 방은 두 개였어. 미싱이 놓인 방과 안방. 미싱 방은 즉, 주인집에 딸린 우리집에 딸린 공장인 셈이었지. 그 방에는 옷감, 일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다양한 길이의 쇠 자, 초크 박스, 재단가위, 핑킹가위, 골무, 헝겊, 미싱 기름 냄새, 다리미, 색색 실패와 실대, 노루발들, 노루발을 얼마나 갖고 놀았는지 말도 못해. 북집, 보빙, 쇠골무, 휘어진 목곡자 생각도 나. 엄마, 자가 왜 휘어져 있어? 그렇게 묻기에도 어렸다. 내가 태어나서 본 자는 그런 자들이 처음이었던 거야. 어머니는 그것들을 갖고 어떤 전체 공정의 일부만을 맡은 거였는데, 나로선 그 전체가 뭔지 전혀 알 수 없었어. 지금도 몰라. 그래도 가끔 옆에서 그 일부 중 일부를 도왔지. 뭔가에 손을 넣어 뒤집거나, 쪽가위를 들고 실밥을 자르거나 했어. 어머니는 내 덕에 빨리 할 수 있다고 고맙다 했지만, 사실 무슨 도움이 됐겠어. 도운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밖에는 돌봐질 수 없었던 거지.

그 일이 슬프게 생각되나요?

오, 아니, 맞아. 슬프다면 슬프기도 하지. 하지만 슬프다고만 하긴 좀 온당치 않게 느껴져. 난 그 모든 것들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고 있어. 학교에서 바느질을 배울 땐 정말 반가웠지. 나는 그런 것들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야. 그건 슬픈 일이 아니라 슬픔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네 말처럼, 아마 미싱이라도 나름의 슬픔을 느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넘어서는 거지. 슬픔을. 슬픔이 어떻든, 페달을 밟으면 돌아서, 사람 모양의 주머니를 만들어. 그게 어떤 일인지 알겠어? 네게 말하고 싶었던 게 바로 그거 같기도 해.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 들어봐, 늦은 밤이었고, 미싱 소리가 조용히 들리고 있었어. 미싱을 조용히 돌린다는 게 뭐냐면... 살살 돌리는 거지. 늦은 밤이었으니까. 그러다 어머니의 악! 하는 소리를 듣고, 티브이를 보다가 잠들기 직전이었던 아버지가 놀라 달려갔다. 나도. 부들부들 떨면서, 어머니는 노루발을 올리고 미싱에서 바늘을 분리했어. 그 바늘은 어머니의 검지 손톱 위에 수직으로 박혀 있었다. 어머니는 손가락을 넣어 버렸던 거야. 어머니의 얼굴은 본 적 없는 모양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바늘 박힌 손톱이 자주색으로 물들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해. 자주색은 황제의 색이라지?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가락에 휴지를 둘둘 말았어. 피가 베어 나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고 밖으로 나가면서 내게 먼저 자라고 했고, 나는 그날 혼자 잠들었어. 그게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잤던 날의 일이야.

저는 정확히 이해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