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집 개

집은 좁았어. 좁다는 생각은 안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좁았던 거야. 그래도 마당이 있었다. 우리집 마당은 아니었어도. 주인집의 마당. 저번에 얘기했지? 우리집이 있었고, 주인집이 있었던 거, 우리 가족은 매달 돈을 얼마 내고, 집을 빌려서 사는 거, 그 집 주인이 사는 집을 주인집이라고 하는 거고. 돈을 못 내면 나가야 해. 어렸을 때는 그런 얘긴 못 들었지. 커서도 못 들었고. 나중에 돌아보니 그랬다 이거야. 하여튼 내 집이 아닌 집에 살았다는 뜻, 주인집과 같은 마당을 썼어. 알겠어? 엎드린 것 같은 1층짜리 두 채가 있었던 거야. 하나는 셋방이 둘 딸린 주인집이었고, 우리집은 저 안쪽의 두 칸 독채였는데... 복잡한 얘긴 됐어. 하여튼 네 것이 있고 내 것이 없다는 거. 잘 모르겠다고? 괜찮아. 나도 그랬어.

주인집은 마당에 쬐그만 삽살개 한 마리를 풀어놓고 키웠어. 삽살개는 대형견이라고? 그럼 무슨 테리어쯤 됐겠지. 그땐 그냥 삽살개라고 불렀어. 그게 중요한 건 아냐. 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와 대문을 조심스럽게 열 때마다, 그 개가 앞에 딱 버티고 서 있었다는 게 중요하지. 쪼그만 개가... 어린이집은 뭐냐고? 내가 어렸을 때 다닌 곳, 학교 들어가기 전에... 구세군어린이집. 그 정도는 검색해 봐. 구세군은... 됐어. 하여튼 그 개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어. 내가 매일 마당을 지나다니는 게 맘에 안 들었던 거야. 으르렁거렸지. 물어 버릴 듯이 짖고. 내가 우리집에 들어갈 때까지 졸졸 쫓아오면서, 아주 맹렬히 앙앙 짖었어. 지금 생각하면 귀엽지만, 나도 쪼그만 애였다고. 어쨌든 집에 들어가려면 그놈의 마당을 지나가야 했고... 어떤 구조인지 알겠어? 모르겠다고? 그림으로 그려주면 알 수 있어? 지금 펜도 있어. 어디 대고 보여 주면 되지? 오늘은 카메라가 꺼져 있다고? 어째서? 잘 알아들으려면 표정 같은 것도 중요하지 않아? 그럼 그게 얼마만 한 개였는지 내가 손으로 이렇게 이렇게 하는 것도 안 보여? 요만한 개였다고! 원 참!

쪼그만 개가... 진짜 쪼그맸거든. 내가 조금 더 나이를 먹었었더라면 발로 차 버리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그 얘기, 개한테 쫓기는 얘기를 하자 아버지는 비법을 알려줬어. 그것은 그냥 조그마한, 강아지에 불과하다. 네가 더 쎄다, 죽기 살기로 싸우면 네가 이긴다, 그러니까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짖고 널 물 것처럼 굴어도, 널 물지 못한다, 아무리 무서워도 걸어라, 절대 뛰지 말아라, 뒤돌아보지 말고 그냥 우리집까지 천천히 걸어와라, 무서운 티를 내면 안 된다, 도망치면 더 쫓아온다, 아예 신경을 꺼 버리고... 오, 난 지금은 물론 개를 좋아해. 도대체 어떻게 싫어하겠어. 개 때문이었는지 뭐였는지 주인집과 엄청 싸운 쪽은 어머니였지. 어머니는, 하여튼 아닌 건 아닌 사람이었고... 미안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잘 집중이 안 돼.

난 그 마당을 좋아했어. 은행나무 한 그루가 대문 들어서자마자 있었고, 엄청 많은 화분들, 선인장, 알로에, 수돗가... 내가 사랑했던, 여러 벌레들, 콩, 집게, 무당, 장구... 그리고 텃밭, 당연히 주인의 텃밭의, 토란은 잎이 넓고 모양이 좋았지. 피마자 씨앗을 맘대로 따서 갖고 놀았던 기억도 나. 삐죽삐죽 가시 돋친 열매가 다 익어 마를 때까지 기다려 까면, 안에 씨 몇 개가, 콩처럼 생겼는데 아주 반질반질하고 무늬가 멋있어. 꼭 뱀 같은, 뱀은 본 적 없었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지. 뱀을 닮지 않았냐? 뱀을 실제로 본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었는데. 어머니는 거기 독이 들었으니까 행여라도 먹지 말라고 했어. 아버지든 어머니든 갖고 놀지 말라고는 안 했지. 분명히 당신들도 갖고 놀았을 거야. 독이 들어 있다니 한층 좋잖아? 이름도 묘했지. 피마자. 그러고 보니 그 개의 이름은 마지막까지 몰랐어. 만약 내가 그 개를 부드럽게 불러줄 수 있었더라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몰라. 내가 얘기하려는 그 일은 이제 얘기할 거야. 여느 날처럼 어린이집에서 돌아왔는데, 그날의 개는 뭔가 달랐다. 며칠간 아버지가 알려준 비법이 어느 정도는 성공하던 참이었지. 도망칠수록 더 쫓아온다는 거, 두려워하지 않으면 두렵지 않은 것이 된다는 것은, 어린 나로서는 엄청난 지혜, 세상의 숨겨진 뭔가를 엿본 것 같은 지혜였다. 그런데 개도 내심 약이 오르고 있었던 걸까? 그날의 개는 뭔가 달랐다.

그날도 나는 개를 못 본 척하고 천천히 걸었어. 그날의 개는 어쩐지 짖지 않았다. 나는 드디어 성공이라고 생각했어. 개가 포기했다고, 주인집의 마루 밑으로 들어갔다고, 내가 이긴 거라고. 그러다 마당을 반쯤 지났을 때, 뭔가가 바짓단을 자꾸 잡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발에 뭐가 붙은 줄로만 알았어. 그래서 돌아보니 개가 아무 소리도 없이, 뒤꿈지를 물려고 계속 달려들고 있었던 거야. 확실히 나는 발목을 물렸어. 쪼그만 개의, 사실 별로 아프지도 않은 이빨이었지. 그래도 겁이 왈칵 났어. 그때까지 개가 짖기는 했어도 문 적은 없었고, 나도 개한테 물려 본 적이 없었거든. 나는 뛰기 시작했고, 개는 그제야 신나게, 정말 신나게 짖기 시작했다. 패배한 쪽은 나였어. 나는 패닉 상태로 도망치다 넘어졌어. 넘어졌는데, 마당의 선인장 화분을 향해 엎어졌던 거야. 그 다음은 기억이 안 나. 다음은 그날 저녁이야. 어머니가 내 팔꿈치에 박힌 선인장 가시들을 족집게로 뽑아 줬어. 가시들은 아주 작고, 얇고, 짧고, 금색이었어. 형광등에 대고 팔을 이리저리 돌려야만 반짝이면서, 뽑아낼 수 있었지.

어째선지 계속 비슷한 마무리네요.

좋은 지적이야. 과연 추억은 사건으로 마무리되는 듯해. 절단선 같은 게 있고 그 너머에서야 뭔가를 알게 되는 거 아닐까? 일테면,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정말 늙은 개였어. 쬐그만, 다리를 둥글게 벌리고 선. 노련함 면에서 내가 밀릴 수밖에 없었지. 너와의 대화도 언젠가, ‘지금 생각해 보면’으로 떠올릴 수 있을 거야. 너도, 특히 네가 그렇겠지.

그럴까요? 만약 그 개와 다시 만난다면 어떨까요?

다시 만날 순 없어. 죽었을 테니까. 절단선이 바로 그런 거고. 그걸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겠어?

노력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