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르는 이름들
외는의 손을 바라보는 자이발쯔의 눈이 검은색과 연자주색으로 혼란스럽게 소용돌이쳤다. 외는의 생각 같은 것은 알고 싶지 않았다. 그것만은 피해야 한다고 살테의 가장 깊은 곳에서 누군가 외치는 듯했다.
“어서!”
날카롭게 소리친 쪽은 외는이었고, 자이발쯔의 손을 낚아채듯 붙들었다. 사고계의 문이 열렸다. 그가 최대한 빨리 밀고 들어오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바깥은 아직 새까맣다. 어둠 가운데 터널의 먼 끝 광원을 기다린다. 신호는 저녁별처럼 희미하게 떠오른다 별은 점점 가까워진다... 함께 터널의 끝으로 가고 있는 이가 있다 터널의 끝을 들고 다가오는 이가 있다 두 개의 터널이 서로를 집어삼킨다 서로를 향해 파고들며 안과 겉을 구분할 수 없고, 별은 마침내 발아래 있다 혹은 온통 빛의 구멍이다
두 마음이 연결되었다. 외는의 내부가, 온갖 색을 한 생각의 물결이 쏟아져 들어왔다.
용서하십시오. 음성으로는 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우릴 지켜보고 있는지!
됐습니다
내가 나에 대해 짊어진 책임도 무겁습니다만, 당신의 책임은 저와 다른 의미에서 더없이 무거운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다른 메젯들의 목숨이 달려 있지요? 이 말은 괜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국군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어요
무슨 얘길 하려고 다 아는 얘기를 늘어놓으십니까?
이제부터 내가 할 말에 당신을 준비시키려고요 우리에게는 깃발이 필요합니다 파괴적이고 강한, 덧붙여 아름다운 깃발이 필요합니다 튤로바의 새 깃발이요 단도직입적으로, 우리는 새로운 몸을 훔쳐야 합니다
무슨...
레날도 나실도 아닌 아쩨이입니다 몸의 주인은 크제르의 직속호위입니다
우리 편으로 만든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런 셈이지요 당신이 그 몸을 갖는 겁니다
“미친 소리!”
자이발쯔는 손을 뿌리쳐 버렸다. 위험한 행동이었다. 세계가 뒤집힌다. 자이발쯔는 몇 발짝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외는도 비틀대다 탁자를 짚어 몸을 가누고는 아랑곳않고 덥석 손을 붙잡아 왔다. 이 충성스런 참모는 둘만 있을 때면 항상 이런 식이었다. 현기증이 자이발쯔를 덮쳤다. 외는의 형상과 생각이 혼란스럽게 뒤섞이며 흘러내렸다.
크제르의 땅에는 벌써부터 그의 주명(主命)이 떠돌고 있습니다 하릇둠이라 불린다지요? 크제르는 이 상황을 오히려 반기고 있습니다 황제에 대한 그의 원한은 그만큼 깊어요 자신이 할 수 없다면 자신의 부하를 섬겨서라도 뜻을 이룰 것입니다
하룻둠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태어날 아침은 어쩌면 황제보다 더 강해질 겁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이리우쯔나스가 원하는 일입니다 하룻둠은 아마 황제의 가장 큰 적이 될 겁니다 새로운 황제로 유력해요 그리고 그런 일은 막아야 합니다 그 일을 막으면서, 더 강해지는 편은 우리여야 합니다 이 고리를 끊는 겁니다 이리우쯔나스를 막는 겁니다 그 몸을 가질 자격은 당신에게만 있습니다!
뭘 막는다고? 자이발쯔가 다시, 그러나 이번에는 무기력하게 손을 빼려 했다. 외는은 놓지 않았다.
이게 정말로 필요한 일입니까?
답은 이미 알고 있다 가득한 빛 가운데 사지를 갖춘 한 형상이 걸음을 빨리 한다 그를 뒤쫓는 또 하나의 날개 달린 형상, 우리는 달리기 시작하지만 우리의 빛나는 날개가 점점 커져 멀리 구멍을 가려 버린다
자이발쯔는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외는은 그대로 버티고 서서 그의 손을 더 꽉 붙들었다.
무서워 마십시오 진실로 두렵습니까?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왜 이 일을 시작한 겁니까? 모두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튤로바들의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걸 보았겠지요? 그 반대여야 합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줘야 합니다 당신과 당신을 따르는 모든 메젯들이 원하고 있어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고 있어요
튤로바들은 그렇다 쳐도, 제국의 신민들은? 그들에게 우리는 그저
아뇨, 아뇨, 그들은 무엇을 원해야 할지 모릅니다! 따라서 당신은 ‘올바르게 원하는’ 역할이어야 합니다 그래요,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은 두 개의 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 일을 원하십시오 내가 그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있어요 나를 믿을 수 없습니까? 아, 그럴 수 없을 겁니다... 그건 이해해요
외는은 갑자기 손을 놓았다. 동시에 둘은 어둠 속에 던져졌다. 자이발쯔는 항상 저 미친 메젯이 하고 있는 생각을 두려워했다. 어쩔 때는 외는 자신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자이발쯔는 꺼져가는 의지를 긁어모아 생각의 어느 편린에든지 초점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황제의 군대가 덮쳐와 그들의 초라한 진지를 으깨 버릴 것이다. 황제가 거느린 천사들, 에우레노바들의 금색 날개, 이제 만 명도 채 남지 않은 메젯들은 자이발쯔의 명령만을 기다리다 반항도 하지 못하고 몸과 영혼 모두를 파괴당할 것이다.
어쩌면 이리우쯔나스가 직접 올지도 몰랐다. 평등하신 모두의 신이. 이리우쯔나스에게도 거느린 군대가 있을까? 아침들보다 더 강하고 아름다운 몸을 지닌 것들이 몰려올지도 몰랐다. 아침보다 더 강하다고? 무엇이 오든지 자이발쯔의 이름을 아는 메젯은 영혼을 지닌 몸과 그렇지 못한 몸 모두 차가운 폐허로 변할 것이었다. 검은 눈의 외는도 마찬가지였다. 저 미친 메젯은 겁도 없이 속삭였지. 파괴해야 합니다. 이리우쯔나스를. 그 충실한 참모는 다소 격앙된 몸짓으로 텐트 입구를 열어젖혔다.
갈색 지평선 저편으로 떨어지는 해를 따라 후퇴 중인 파르스름한 석양이 청야 작전이라도 펼치듯 탁상과 그 위에 놓인 지도, 아직 켜지지 않은 발광구의 표면, 두 메젯을 감싼 망토를 탐욕스럽게 핥고 있었다. 자이발쯔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산만하게 떨리는 의식이 자연스럽게 손으로 집중되었다. 언젠가 그의 굵은 손가락 네 개도 공중으로 해산되고 만다. 이 행성의 메젯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가슴 속의 영혼, 살테 수정도 마찬가지로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모든 살테는 땅속으로 스며들고, 스며든 살테는 다시 온전한 살테로 자라난다. 의식은 해체된 살테 속에서 영원한 꿈을 꿀까? 나는 앞서 살았던 다른 병사의 꿈인가? 모를 일이었다. 언제부터 이 꿈이 시작되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아침들에게는 그들의 위업을 영원히 기리는 노래들이 있었다. 천 년 전의 일까지도. 지금까지 태어난 아침들은 노래와 노래로 빈틈없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 외의 모든 메젯들은 코러스였고 이 행성의 모래였다. 자이발쯔와 튤로바들은? 어쩌면 ‘황제 사냐카와 13년의 반란’이라는 짧은 절로 남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 절은 황제 사냐카의 대정복 편과 하릇둠 굴기 편 사이에 끼게 될지도. 자이발쯔에게 있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고 있는 것은 자신의 몸 외에는 없었다. 끝까지, 꿈속에서 모든 것을 망각하기 전까지, 그 다음 꿈을 꿀 때까지 이 몸은 그를 쫓아올 것이다.
아름다운 빛깔로 불타는 살테 농장 가운데 서서...
나의 이름을 내가 골랐네... 주둔지의 누군가가 튤로바의 노래를 흥얼대고 있었다. 아니면 외는과 사고계통을 이었다 뗐다 하는 통에 일어난 환청일지도 몰랐다. ‘당신의 이름을 당신이 가지십시오! 그것은 새로운 살테입니다.’ 외는은 그렇게 말하라고 했다. 자이발쯔 역시 자신의 이름을 자신이 골랐다. 그러나 이것까지도, 모든 삶은 이리우쯔나스가 우리의 살테 속에 숨겨놓은 명령이 아닌가? 자신의 이름을 자신이 고르는 아침들을 따라하고 있을 뿐 아닌가? 우리, 튤로바의 더 아름다운 깃발이라고? 그것이 나라고? 거의 이십 년 전에 겪었던 열병식이 아직도 생생했다. 광장에 가득한 병사들, 온갖 수많은 계급들, 첫 번째 함대의 금색과 백색, 휘날리는 수백의 군기들, 먼발치에서 본 황제, 금색과 백색의 홍수, 부서지는 햇살, 함성, 머리 위를 도는 레제노바들이 끊임없이 울려대는 경례구호. <영원히 제국!> 자이발쯔는 그 현기증으로부터 도망쳤고, 황제와 그 군대의 현기증을 파괴하기 위해 싸워왔으며, 이제는 거의 행성 전체를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지금 그와 그를 따르는 튤로바들이 뒤집어쓴 것은 포화와 라스에 찢기고 헤진 검푸른 망토였다. 자이발쯔는 눈을 들었다. 외는은 텐트 입구에 살테 없는 몸처럼 서 있었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모든 것이 아신네즈롐의 밤과 함께 어둠 속에 섞여들고 있었다. 자이발쯔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어지러움은 어둠 속에서 더 명료해진다. 그는 눈을 감아 버렸다.
나의 이름을 내가 골랐네... 주둔지의 누군가가 튤로바의 노래를 흥얼대고 있었다. 아니면 외는과 사고계통을 이었다 뗐다 하는 통에 일어난 환청일지도 몰랐다. ‘당신의 이름을 당신이 가지십시오! 그것은 새로운 살테입니다.’ 외는은 그렇게 말하라고 했다. 자이발쯔 역시 자신의 이름을 자신이 골랐다. 그러나 이것까지도, 모든 삶은 이리우쯔나스가 우리의 살테 속에 숨겨놓은 명령이 아닌가? 자신의 이름을 자신이 고르는 아침들을 따라하고 있을 뿐 아닌가? 우리, 튤로바의 더 아름다운 깃발이라고? 그것이 나라고? 거의 이십 년 전에 겪었던 열병식이 아직도 생생했다. 광장에 가득한 병사들, 온갖 수많은 계급들, 첫 번째 함대의 금색과 백색, 휘날리는 수백의 군기들, 먼발치에서 본 황제, 금색과 백색의 홍수, 부서지는 햇살, 함성, 머리 위를 도는 레제노바들이 끊임없이 울려대는 경례구호. <영원히 제국!> 자이발쯔는 그 현기증으로부터 도망쳤고, 황제와 그 군대의 현기증을 파괴하기 위해 싸워왔으며, 이제는 거의 행성 전체를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지금 그와 그를 따르는 튤로바들이 뒤집어쓴 것은 포화와 라스에 찢기고 헤진 검푸른 망토였다. 자이발쯔는 눈을 들었다. 외는은 텐트 입구에 살테 없는 몸처럼 서 있었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모든 것이 아신네즈롐의 밤과 함께 어둠 속에 섞여들고 있었다. 자이발쯔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어지러움은 어둠 속에서 더 명료해진다. 그는 눈을 감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