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시간 여행선

문자라는 반시간적 매체를 사용하는 표현 장르인 문학 중에서도, 특별히 인간의 문명 시간과 관계하는 장르인 SF에서, 시간기계의 등장이 가장 먼저 조준하게 되는 것은 장르 자체다. 그것은 너무나 중요한 주제를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그 자신의 지반을 위협해 버린다. 시간기계를 그냥 뒀다가는 장르 규범 내의 정상 작동 범위를 벗어나, 있어야만 하는 칸막이를 위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은 반드시 자신의 자유로운 작동을 막아서는 여러 제약들과 함께 등장한다. 어디에서 어떻게 다뤄지든, 그 누구도 그것을 '완전하게' 손에 넣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악당 같은 저급한 것에서부터 기계의 고장, 우주의 분리, 탑승자의 노화, 역사의 꼬임, 정말이지 무엇이든, 그것은 그것의 방해와 항상 함께한다. 초시간 여행선과 관련하여 가장 신경 쓸 만한 부분은 바로 그 제약들의 형태이다. 어쩌면 거의 모든 SF적 고안을 이 제약과의 타협 아래 있는 시간기계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동 가능한 공간이 살갗 안으로 제한된 형태는 예지력과 완전한 기억이다. 시간축의 고정을 대가로 공간축의 권능을 얻은 형태는 순간이동장치다. 인조인간과 개조인간은 인체를 떠나는 대신 인생-생물 시간의 확장을 얻은 것이고, 외계인들은 외계인인 대신 미래로부터 우리에게 온다. 인간이 아니라 공간이 이 기계에 탑승하면 외우주의 식민지, 멸망 후의 황무지, 사이버펑크적 미래도시 따위가 된다. 이 일지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제약을 품은 초시간 여행선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과 관계하는 그 모든 여행선들이 가리키게 되는 바로 그것은 기록물이다. 이것은 나를 태우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