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나는 강가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사람들이 종말을 얼마나 열렬히 원하고들 있는지! 종말은 죽음이란 개념이 문명 단위까지, 행성 단위까지, 세계 단위까지 확대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종말에 대한 열망은 공적인 것에 대한 비틀린 열망, 즉 경전이 쓰이지 않은 종교이기도 하다. 다른 무엇보다 인류라는 것과 씨름하는 이 신화에서, 종말에 대한 생각은 피하기가 더 어렵다. 이 신화에서 다뤄지는 진지한 위기들에는 반드시라 해도 좋을 정도로 종말적 분위기가 서려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정면으로 종말을 다룰 때에조차 자주 간과되는 것은, 그렇다면, 종말이 아니라면, 종말을 피한다면, 종말에서 살아남는다면, 그렇다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즐거워 보이고 강가에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째서 종말을 그토록 열렬히 원하는 것인지? 내가 자꾸 생각하게 되는 그것은 대체 미래의 어떤 굉장한 빛으로부터 드리워진 그림자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