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짐승

이 신화의 가장자리에 큰 짐승이 앉아 있다. 이 신화의 원주민들은 그 짐승이 어디에서 왔는지 관심이 없다. 장엄이 신화의 미덕이던 때에, 이 신화가 인간사 위로 혜성처럼 등장했던 때에, 큰 짐승은 스스로 이쪽으로 와 조용히 앉았다. 이곳에 저것이 있어도 됩니까? 친구가 없을 정도로 고지식한 이들이나 그렇게 물을 것이다. 큰 짐승은 그 질문자보다 더 고지식하다. 큰 짐승은 원래 누구의 허락도 없이 있다. 큰 짐승은 자신 외 다른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큰 짐승은 백경이고, 드래곤이고, 레비아단이다. 큰 짐승은 전설과 신화와 민담 속을, 자신이 가고 싶은 자리를 찾아 온갖 이야기들 사이를 활보한다. 이뤄지지 못한 영혼들이 인간사를 떠돌며 여러 형상을 뒤집어쓰는 것과 달리, 큰 짐승은 자신의 커다란 인형옷을 들고서 그 속을 채워줄 영혼을 찾아 돌아다닌다. 그것은 외계인보다 이질적인 세계에서 온다. 어디에도 큰 짐승의 원래 자리는 없다. 큰 짐승은 어디서도 어울리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 큰 짐승은 언제나 재앙이지만, 그래서 어쩐지 미워할 수 없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