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약

그것을 삼킬 수 있다. 그것을 쥘 수 있다. 그것을 쉽게 숨길 수 있다. 그것엔 색깔이 있다. 그것은 포장되어 있다. 그것은 작지만, 그것의 경계는 뚜렷해서, 그것을 다른 것들과 언제나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 그것 한 개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 여러 개도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을 목적하는지 그것의 형태로부터 전혀 유추할 수 없지만, 그것을 삼킨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그것은 작용한다. 그것은 힘을 감추고 있다. 그보다는, 힘이 보관된 금고를 여는 열쇠다. 약이라는 집약은 마술의 유산이다. 이 신화에서의 약은 도구 자체를, 우리 바깥의 대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향해 놓인 도구 자체를 가리킨다. 신화의 내적 논리로만 치자면 그것의 등장은 매우 불성실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불성실함 그 자체를 가리킨다. 그것은 무책임한 것이다. 그것은 한계에 다다른 형상화를, 불가지를 뜻한다. 그것은 신, 이 신화로 넘어오며 한껏 초라해진 신, 분자식이라는 경전으로 남은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