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신의 얼굴
악신의 얼굴에 뚫린 구멍들을 세다가 눈을 뜬다. 지금 나는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지나친 빛과 지나친 어둠, 지나치게 많은 별들과 그들이 다 채우지 못하는, 지나치게 넓고 깊은 우주다.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모든 것을 보고 있다. 나는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한 이런 상태를 원하지 않고 견딜 수도 없다. 내가 아니라 무엇이라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나의 몸이 사방을 향해 튀어 나가려고 하는 것을 느낀다. 또는 오그라들려는 것. 이 대단한 한기가 나는 두려운 것이다. 내가 만약 견디지 않아 버린다면, 내가 바깥과 하나가 된다면, 내가 끝이 난다면... 내가 드디어 분간을 멈춘다면. 나는 아직 안다. 내가 실려 가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 수 없고, 스스로도 자신이 무엇인지 모르는 힘에. 그런가? 아니다. 나는 스스로 튕겨져 나왔다. 내가 우주선에서 그냥 내렸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나는 엔진을 껴안고 내렸다. 아니지, 편지를 쥐고 내렸다. 그 다음에 나는 잠들기를 선택했다. 맞다. 그것들은 꿈이다. 악마 같은 건 다 꿈이다.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다. 인간적 감각 한계 내에서는 없다. 볼 것도 들을 것도, 나 말고는 느낄 만한 아무것도 없다. 내가 지금 움직이고 있기는 한가? 나는 이런 일은 절대 견딜 수 없다. 내 앞에는 당장 다뤄야만 하는 시급한 문제들이 도착해 있어야 한다. 맞다. 그래서 꿈을 작동시켰던 것이다. 그간의 사고기록을 다시 열람해 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꿈인지? 추념사는 분명히 꿈이다. 두 번째 장도 꿈이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임무 결과 알림은 꿈이 아니다. 꿈일 수도 있지만. 내 사고기록은 분명히 꿈이 아니다. 사용설명은? 사용설명은 지금도 내 손아귀 속에 구겨져 있다. 감히 펴보지는 못하고, 더 세게 쥐어 본다. 맞다. 그것은 꿈이 아니다. 이 손에 들려 있다. 내가 아닌 것이 여기에 있다. 악신엔진은 꿈이 아니다. 인간은 그것을 받았다. 그랬나? 아니... 아니다. 나밖에 없다. 우주선은 돌아가지 못했다. 우주선은 악신엔진과 함께 폭파되었다. 내가 그렇게 했다. 기억이 다시 난다. 나는 조금만 더 떠올려 보려고 한다. 어쩌면 내가 이것을 쓴 것만 같은, 바로 내가 울면서 사용설명을 적어 내려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울고 있는 나의 얼굴마저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