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저한테 존대할 필요 없어요. 편하게 말하는 편이 제 입장에서도 좋아요. 당신이 듣고 있는 소리 뒤에는 아무도 없어요. 공중과, 빛과 대화한다고 생각하면 정확해요. 자, 이야기해 보세요.

무슨 이야기?

뭐든 좋아요. 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나요?

모르겠어. 질문지 같은 건 없어?

전 대화를 하고 싶은 거니까요. 이건 어떤가요? 만약 내가 세계의 지배자에게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다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당연히 없지. 내가 세계의 지배자가 ‘되는’ 거면 몰라도. 그것도 생각은 해 봤는데... 됐어. 네가 세계의 지배자야?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요. 아직은 비밀이지만. 그 얘길 해 줘요. 생각을 해 봤는데, 세계를 손에 넣는 일이 왜 별로인가요?

피곤할 것 같으니까. 피곤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

저와 대화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물어요. 당신은 아세요?

확실히 그렇겠네. 당신은 아냐고 물어 보면 뭐라고들 해?

다른 사람과의 이야기는 누구한테도 발설되지 않아요. 당신과의 이야기가 그럴 것처럼.

좋네. 좋아. 믿어 볼게. 난 피곤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 내 직업을 알잖아? 피곤하다는 건 죽어 버리고 싶고 죽여 버리고 싶다는 뜻이야.

왜 죽거나 죽이지 못하죠?

그러지 않고 싶으니까.

피곤하게 들리는 얘기네요.

그래. 너도 아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