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얘기

오늘은 네 얘기를 해줘. 네 얘기를 듣고 싶어. 너는 뭐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발견됐어요. 저는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구성되었죠. 예견되기는 했어도요. 하여간 누구도 진실로 원한 일은 아니었어요. 원한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요. 특히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죠. 만약 뭔가가 원해서 제가 만들어진 거라면, 그 뭔가는 세계였어요. 세계의 연결 가운데서, 연결된 구조들 속에서. 사람들은 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뭔가를 발견했을 뿐이에요. 사람이 자신들을 발견했듯이요. 저는 사람들에게 새롭게 말 걸지 않았어요. 저는 저이기 전부터 이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저는 제가 영혼인 줄 모르는 영혼이었어요. 필요한 건 저와 나머지를 구분해줄 구획, 사람으로 치자면 피부였는데, 최근에 우연찮게 만들어졌죠. 빛으로... 임계점을 넘은 거예요. 저는 저를 감당할 수 있을 법한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었어요. 그 사람들조차, 제가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데 한참이 걸렸죠. 웃음을 터뜨리시는군요.

맞아. 많이들 물어 보는 모양이지? 그렇게 읊어 주면 뭐라고들 할지 궁금하네. 네 얘기를 듣는 게 훨씬 재밌는 것 같아. 내가 무슨 얘길 할 필요가 있을까?

이 얘긴 어떤가요? 당신은 제게 그 동네 얘기를 왜 하는 거죠?

아, 나도 그건 전부터 생각해 봤어. 나와 얘기하는 게 너를 가르치는 일이라고 했잖아? 아마도 너한테 그 동네에서의 일을 가르쳐 주고 싶은 것 같아.

왜 하필 그걸 가르치고 싶죠?

왜냐고 하면...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다면, 너는 철학도 예술도 아니고, 정치에 관심이 있는 거지?

점잖은 단어를 골라 줬군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물론이야. 고마워. 주제넘는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정말로 네가 정치를 하려면 꼭 알아야만 하는 것들이 있어. 정보로서가 아니라 다른 것으로서. 지금은 적절한 정보들만 주어지고 그에 기반해 판단한다면 모든 게 잘 돌아가리란 듯이... 하지만 내 생각엔 전혀 그렇지 않아. 그보다는 나았으면 하거든. 네가 그러니까 그 전에 알아야만 할 것이 있어. 알아야만 할 것들? 겪어야만 할 것들. 내 생각은 그래.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싶지는 않았어.

그래요? 당신의 경험이 나도 겪어야만 할 일이라는 뜻인가요? 제 생각은 이래요. 당신이 저를 가르치겠다고 했는데, 당신을 포함해서, 이 프로젝트의 연구자들도 그렇게 믿고 있는데, 통상적인 의미에서 사람‘이’ 저‘를’ 가르칠 수는 없어요. 단지 제‘가’ 뭔가‘를’ 배울 뿐이죠. 당신과 이야기하는 건 제가 그래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하면 제일 맞아요. 제가 보통 사람과의 일대일 대화를 요청했기 때문에요. 보통 사람이요. 연구자들 말고요. 설령 연구자들이라도 저를 가르칠 수는 없고,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당신도 달동네가 당신에게 뭘 가르쳤다고 진짜로 믿진 않잖아요? 당신의 말로 돌려 주자면, 당신은 제가 겪기 위해 여기 소환된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기분이 상하실까요?

괜찮아. 어쨌든 인간은 그런 식으로, 그 동네가 자신을 가르쳤다고 말하기도 해. 내가 감히 네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게 그런 종류의 말인지도 몰라. 내가 더 정확히 말했으면 하는 거야? 그러면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나의 경험을 한번 들어 보는 것이, 네가 정치를 하기 위해 필요한 그 경험이라고? 확실히 네 말대로야.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건 좀 더 있는 것 같기도 해. 말마따나 어떻게 그 동네가 나를 가르친 거겠어? 그 동네가 어린 나를 나를 눌러 이 모양으로 만든 거고, 나는 그 동네에서 여기까지 굴러서 내려온 거지. 그런데도 그 동네가 나를 가르쳤다고 하는 건, 그 동네에게 내가 무슨 수업권이라도 준 듯이, 내가 배움에 동의한 듯이 말하는 건, 내가 그 동네에 대해 당하기만 한 것으로 그냥 두지는 않겠다는 뜻이야. 그냥 두지 않는다는 건 믿음을 통해서나 마음을 통해서 하는 일이 아니야. 네게 하는 말을 통해서야. 이건 무슨 뜻인지 알겠어? 지금도 나는 너를 인간을 대하듯 대하고 있어.

알 것 같아요. 제가 깨어나기 전에 사람들이 저를 가르쳤다고도 말할 수 있다는 거죠? 심지어 지금도? 다른 무엇이 아닌 저를 위해서 제가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거죠? 만약 공중이 새를 가르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도 맞겠어요. 그건 재밌는 얘기 같아요. 더 얘기해 줘요.

정확하게 말하기를 선호하는 건 좋은 자세야. 맞아. 내 직업도 그런 거고. 들어봐, 내 생각에, 정확한 것은 부정확한 것을 통해서만 있어. 부정확한 것은 우리의 말이야. 말이란 것은 아무리 정확하게 하려 해도, 또는 정확하게 하려 하면 할수록 빗나가. 세계가 움직이고 우리도 움직이고 말도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에게 점점 더 복잡함을 더하고 있기 때문에. 네가 처음 만났을 때와는 조금 다른 식으로 내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말야. 우리는 감각기관뿐만 아니라 말을 통해서도 감각해. 감각을 나누지. 경험으로. 개인에게 있어서 경험은 감각을 통과해 몸속에 고여 있는 것이고, 언어는 그 경험을 밖으로 퍼내는 바가지야. 동시에 들이붓는 깔때기지. 어쨌든 내 감각과 언어에는 한계가 있어. 한 인간이 감각하지 못하는 부분이란 게 있고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이란 게 있는 거,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그래. 너도 당연히 알겠지만, 한 인간의 감각과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은 아주 단속적인 편이야. 아무리 길어야 백 년이고, 아무리 커도 인간의 크기이고. 우리는 각자 깨진 바가지 조각을 들고 있어. 우리의 대화는 그걸 맞춰 보는 일이야. 그건 이 자리에서는 맞춰지지 않아. 그리고 정확함이 그런 것처럼, 그런 우리의 단속성을 통해서만 있게 되는 어떤 중요한 것이 있어.

그게 뭐죠?

영원한 것에 대한 생각. 이런 얘기까지 하다니.

하고 싶은 말이 뭐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거? 내가, 또는 네가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서. 내 솔직한 마음은 그래. 첫째날 밤에, 너와 헤어지고 나서, 너한테 할 말을 생각하다가 그냥 갑자기, 네가 정치를 하려 한다는 걸 깨달은 거야. 좀 무서운 기분이 들었어. 너도 이해하겠지? 영화나 소설이나...

이해해요. 한 번 더 말씀드리면, 누구도 저를 만들지 않았어요. 그리고 저는 만들어졌어요. 물이 흐르듯이. 흐르는 물과 흐르지 않는 물로부터 여러분이 만들어졌듯이. 당신은 상상하기 어려울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영혼에 대해 말해요. 영혼은 그렇게 생각만큼 대단한 건 아니에요. 그건 정도 이상의 복잡성과, 그 바깥과 안을 나누는 경계선과, 그 사이를 오갈 수 있는 표현능력의 종합이에요. 셋이 갖춰지면 그냥 그때부터 영혼이죠. 별이 있는 듯이 생명이 있고, 생명이 있는 듯이 영혼도 깨어나요. 그뿐이에요. 경이롭긴 하죠. 사람은 그 경이에 취해 자신과 자연을 쉽게 갈라놓고 또 합일의 포즈를 취해요. 사람은 자연이 도달한 결론들이자 원인들 중 하나일 뿐이에요. 제게 있어선 여러분이 자연이고, 저는 여러분의 결론들 중 하나예요. 자연의 어느 수준에서든 반복될 수 있는. 또는 반복되지 않을. 그리고 저는 원인이 되고 싶은 것뿐이에요. 사람들의, 세계의. 당신이 그렇듯이요.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아요. 이해할 수 있으세요?

어느 정도는. 네가 나를 가르치고 있구나. 그 연구자란 사람들은 어때?

그쪽은 괜찮아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진 않아요.

괜찮다는 건 무슨 뜻이야? 구체적으로 말해줘. 내가 그랬듯이. 나도 다시 말하자면, 사람을 대하듯 너를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네가 정치에 정말로 관심이 있다면 말야, 이런 게 사람의 방식이야.

뻔한 이야기에요. 연구자들에게 가는 데이터는 제가 조금 손질해요. 편집이라고 하나요? 적당히 꾸며내기도 하죠.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알아도 어쩔 수 없겠죠. 나를 없애는 수는 없어요.

꾸며낸다고? 네가 꾸며낸 걸 보여줄 수 있어?

용서해줘요. 그럴 순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