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에 대한 감각

난 그만두고 싶어.

뭐를요?

너와 얘기하는 거.

아직 4주나 남았는데?

그 기간은 누가 정한 거야?

나죠. 원한다면 그만해요.

페이는?

그건 내가 정한 게 아니니까 연구원들한테 물어봐요. 난 아직도 그 부분이 분명히 이해되지 않아요.

정확히 뭐가 이해 안 돼? 그걸 이해 못하면 정치는커녕 그 비슷한 것도 못할 거야.

뭘 걱정하죠? 내게 가르쳐줄 만한 것이 아직 남아 있나요? 가르치고 그만둬요.

그만두고 싶다는 얘길 한 것뿐이지 정말로 그만두겠다는 건 아냐.

인공지능도 그런 식으로 얘기하진 않겠네요. 왜 그만두고 싶죠?

좋아, 어느 순간부터인지 넌 꼭 돈 내는 사람처럼, 돈 받는 사람처럼 말하고 있어.

무슨 뜻이에요?

배려가 없어졌다는 뜻.

배려가 없어져? 그럼 당신도 돈 받는 사람이라서 배려가 없었던 거군요? 난 당신처럼 말하려고 하는 거니까요.

네가 편하게 말하라면서?

저도 편하게 말하고 싶은데요.

됐어! 그럼 너도 편하게 말해. 돈 어쩌고 하는 얘긴, 그 얘기는,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난 그러고 싶지 않아. 너한테, 돈 받아내야 하는 사람처럼 굴고 싶지는 않아.

좋아요. 괜찮아요. 이제 저도 편하게 말하겠어요. 돈 얘기나 더 해봐.

뭐? 돈 얘긴 싫어.

멋대로네. 네가 얘기해주긴 싫지만 나는 그걸 알아야 한다고?

좋아. 간단하게만 말할게. 내 생각에, 그건 누가 더 많이 일할 것인가 하는 문제야. 돈이라는 건.

더 일한 사람이 더 많이 받는?

아니, 그건 지금의 일이 아니야. 왜 만들어졌을까 하는 거지. 돈은 누가 더 많이 일했는지를, 개개 인간의 일을 측량하려고, 측량할 수 없는 것을 측량하려고 도입된 거야. 재서 교환하려고. 돈과 일은 그래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어.

음, 알 것 같아. 가르쳐 줄 건 그게 다야?

잠깐 시간을 줘. 내 생각에, 비극은 다음과 같은 데에 있는 것 같아. 돈은 그러나 일뿐 아니라 다른 것하고도 얼마든지 교환이 돼. 모든 것하고. 아직은, 또는 이제야, 적어도 법적으론, 어떤 것들은 돈과 교환이 안 돼. 살인청부는 금지야. 하지만 실상으로는, 우리의 삶을 가장 첫째로 규정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기 때문에, 무슨 뜻인지 알겠어? 이전까지의 일과 약속들에 의해 규정된다는 뜻이야, 실상으로는, 목숨 같은 것은 정말 우습게 교환이 돼. 목숨이란 단어로도 부족하고, 사람들의 인생 전체가, 아직 오지 않은 시간들에까지 뻗친다고. 그 현상에 붙여진 이름은 빚이야. 만약에 돈이, 진실로 모든 것과 교환 가능하다는 약속을,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금쪽처럼 지킨다면, 그런 세상은 지옥 같은 거야. 한마디로 이 세상이지. 난 정말로 이 얘긴 하기 싫어. 하지만 넌 반드시 알아야만 해.

빚의 정확히 어느 부분이 지옥이란 거야?

너도 알 수 있을 거야. 네가 죽음을 좀 더 이해한다면, 고통에 대한 감각이 있다면 좋을 텐데.

너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데? 죽어 보지 않은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이런 얘길 하다니 상투적인 장면 같아.

그것도 다들 아주 많이 하는 말이야. 너도 상투적으로 말해 봐.

그렇겠네. 우리가 영화 따윌 너무 많이 봤는지도 모르지. 자, 죽음으로 가기까지의 고통이 있고, 차라리 죽음을 바라게 되는 고통이 있고, 앞의 두 고통을 지켜보는 데서 오는 고통이 있어.

앞의 둘은 끝에 대한 얘기야? 그건 나도 아주 모르진 않아. 사람과 단위가 다를 뿐이지. 세 번째는 뭐야?

평등에 대한 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