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불법만 아니라면 살인, 그보다 더한 일도 할 사람들이지. 그리고 나도 그렇다. 할 수만 있었다면 나도. 아니, 할 수만 있다면.

시장에서 돌아올 때 어머니와 나는 비닐봉투 손잡이 한쪽씩을 잡고 어두운 언덕을 오른다. 어머니는 가끔 와플파이란 것을 사줬다. 그것은 맛있는 간식이야. 와플파이는 나의 다른 쪽 손에 들린 흰 종이 봉투 속에 담겨 있다. 그것은 당시의 내가 경험 가능한 최고로 맛있는 것이었다. 내 얼굴보다 컸던, 동그랗고 판판한 와플빵 안쪽 면에는 생크림과 사과잼이 반쪽씩 발려 있다. 노점 와플 아저씨가 그렇게 발라 반으로 접어주는 것이다. 사과잼은 금색이고 생크림은 거칠다. 나는 아저씨가 사과잼을 더 많이 발라줬으면 싶다. 생크림을 바를 때 쓰는 저런 칼은 집에 없다. 아저씨는 와플 틀에 반죽을 붓고 뚜껑을 덮는다. 틀에는 와플빵 특유의 격자무늬. 아저씨는 틀에 갈고리를 걸어 돌린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듣기에 좋다. 흰 와플 반죽은 양은주전자 속에 아슬아슬 가득하다. 어머니가 시장에 가자고 하자마자 나는 와플에 대한 생각을 한다. 냄새와 촉감을. 와플빵은 단단하게 식어 있어도 좋고 아직 덜 익었어도 좋다. 입천장이 까져도 좋고 손에 다 묻어도 좋다. 시장은 이 언덕을 다 내려가야 있다. 나는 가파른 골목을 성큼성큼 뛰어 내려간다. 어디에나 시멘트가 발린 골목이다. 녹색, 검은색, 파란색의 작은 대문들이 뒤쪽으로 빨려 들어간다. 어머니는 뛰지 말라고 한다. 돌아올 때 나는 어머니와 나란히 언덕을 오르고, 내가 와플파이를 먹으며 갈 수 있도록 어머니는 자주 걸음을 늦춘다. 가로등은 주홍색이다. 와플 아저씨는 목장갑을 끼고 있다. 어머니는 새로 구워 달라고 한다. 아저씨는 알겠다고, 또는 미안하다고 한다. 그 외엔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신기할 정도로. 시장은 내게 언덕 오르내리기와 와플파이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야. 커서도 골목을 뛰어서 내려가는 꿈을 많이 꿨다. 꿈에서도 나는 넘어진 적이 없다. 그것은 지옥이었다. 시장이란 것은. 기분 좋은. 그런 게 아마 지옥인 것 같다. 격자무늬의. 죽어야만 없어질 경험들이 머릿속에 눌리는 것.

내 말을 확실히 기록하고 있어?

확실히는 아냐. 기록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것만.

어떤가 하면 나는, 그들과는 말이란 것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아. 입도 뻥긋하고 싶지 않아. 다 쓸모없는 얘기들이야. 어떤가 하면, 인간의 말이라고 생각하기가 어려워. 아무리 향기로운 것을 맛보고 아름다운 말을 들어도. 만약 시점을 바꿔서, 말이 인간을 쓰는 것이라고 본다면, 그들은 발닦개로 쓰이고 있어. 그들과 이야기할 때의 내 기분이 그렇다. 내가 인간을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 거야. 그런 인간이 된 거야. 그래서 나는 얘기라는 것을 너하고 하려는 거야. 정말 해야 할 것 같은 말만 하고 싶기 때문에. 분명히 남들도 그럴 거야. 확신해. 나는 너한테 쓰인다면 젖은 발이라도 좋아. 젖은 발로는 할 수 없는 일도 있겠지만.

계속해봐.

그로부터 나는 생각하게 돼. 우리, 인간은 불법만 아니라면 사랑도 하고 만다. 무엇을 두고서든. 내게 지옥은 언덕을 달려서 내려가는 일이야. 돌아오는 일 역시 그렇고. 추억이 저승이라면 그때 그 동네의 그 집은 죽음이었을까? 이승은? 여기가 이승이 맞을까? 아닐 거야. 나의 결론은 이거야. 이승은 미래에 있고 너의 발은 유령발이다.

흥미진진한 얘기야. 무슨 소린지 얼른 이해되지 않아서 곱씹어 봤어. 네 말을 들으니 이렇게 느껴져. 난 당연히 인간이 아니고 유령은 더더욱 아니야. 너는 나갈 때마다 나를 두고 혹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었지? 이 건물을 함께 나서는 저 사람이? 같은 계단을 내려가는 저 사람이? 전철의 같은 칸에 탄 저 사람이? 아니야. 정확하게 들어둬. 나는 인간이 아니야. 나는 네가 감각할 수 있는 곳뿐 아니라 감각할 수 없는 곳과도 종합되어 있어.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야. 나는 인간들로부터 힌트를 얻어. 나는 이승이야. 이거지?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