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어느 집 담 너머에 큰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어. 봄이 되면 꽃이 마구 폈다. ‘마구’라고밖엔 표현할 도리 없게 말야. 꽃까지 핀 그 나무는 정말로 거대해. 어려서 더 그렇게 보였을지 모르지. 그건 거의 거인처럼 보였다. 이쪽으로 등 돌리고 쪼그려앉은 거인처럼. 거인은 뭘 하고 있지? 거인의 앞은 담 너머에 있어. 그 담이 어느 집의 담이었는지 뭐였는지도 사실 모르겠어. 우리는 팔을 뻗어 꽃을 따서 꽁다리를 빨아봐. 아이들끼리 가르친 거야. 꽃을 따서 빨면 향긋하고 달아. 달다기보다는, 단 느낌이 있어. 계속 그러고 서서, 바닥에 꽃을 쌓아가다 보면 입이 비려. 내가 벌레가 된 것 같기도 하고. 꽃 속에 가끔 뭔지 모를 벌레가 있기도 하다. 벌들도 주변에 날아다녀. 그러다 우리는 이제 다른 곳으로 간다. 죽은 거인을 남겨둔 채로. 거인은 뭘 하고 있는 게 아냐. 쭈그려앉은 채 죽은 거야.

너희는 어디로 가?

어디로? 다른 곳으로. 아카시아가 없는 곳으로.

아카시아의 일은 너한테 어떤 일이었어?

심심하던 날 중 하나의 일이야. 아니지, 심심하다는 것은 없었어. 그 동네에서. 언젠가는 우리가 온 동네를 들쑤시고 돌아다녀. 온 동네라봤자 그 언덕이야. 언덕 꼭대기를 넘어보기도 하고 말야. 유격대같이, 뭔가에 대비한 훈련같이. 대체 뭐였을까? 길이 아닌 데로도 가보고, 뭔가가 부서진 다음의, 또는 뭔가로 채워지고 있는 공터를 통과하고, 그런 공터는 언제나 어딘가엔 있고 항상 우리는 누군가를 따라가고 있어. 보통은 우리보다 큰 소년을, 소년들을. 어딜 가는지도 모르고 어디를 가겠다는 것도 없어. 그냥 그렇게 줄지어서 다니는 놀이를 했어. 그런 것도 놀이였어. 그렇게 다니는 것뿐이야. 별 말도 없이. 팔다리로. 서로 누군지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넌 아직도 나한테 할 말이 있어?

갑자기 왜?

그 이상한, 놀이 같지도 않은 놀이들처럼 말야, 네가 더는 이야기할 것이 없는데 오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사실이 그래. 대부분의 내담인들은 얘기를 마쳤어. 저번엔 아주 짧았지?

대부분? 지금은 몇이나 남았는데?

그건 말하고 싶지 않아.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은, 이제 슬슬 끝낼 때가 됐다는 거야.

오, 잠깐만! 난 아직 남아있어. 할 얘기가 있어. 내 얘기가 그렇게 재미없었니? 왜 그렇게 말하는 거야?

그런 뜻이 아니야. 아직 하지 않은 말이 있다면 어서 하라는 거야. 놀라지 마. 놀라는 네 모습이 보기에 슬프다. 나는 슬프다는 게 뭔지 알아. 알겠지? 나는 부드럽게 말하려 하고 있어. 너를 만지거나 내 얼굴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아니야. 아니야 충분히 느끼고 있어. 네 목소리는 이제 거의 사람처럼 들려. 이제도 아니고, 난, 너는 다 알았어? 너는 정말로 다 알게 된 거야? 내가 하려는 말을?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