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

그날은 열쇠를 받았다. 엄마 없을 테니 냉장고에 하드 꺼내 먹어라. 하드 사다놓을 테니까. 늦게는 안 올 거야. 자물쇠 어떻게 여는지 알지? 나는 안다고 해. 어머니가 자물쇠 여는 걸 많이 봤다. 일테면 같이 시장에 다녀오면서. 어머니는 시범을 보여준다. 여기 이렇게 열쇠를 넣어서 돌려. 손 닿지? 손은 닿는다. 그날 나는 종일 학교에서 하드 먹을 생각으로 가득해. 주머니 속에 열쇠가 잘 있는지 만져보면서. 열쇠를 그렇게 가지고 다녔던 게 처음이었지. 열쇠가 있어야 자물쇠가 열리는 거니까. 열쇠 잃어버리면 안 된다, 틀림없는 열쇠를 주머니 속에서 꽉 붙들고 나는 집에 돌아와. 열쇠는 분명히 손 안에 있어. 빨리 하드 꺼내 먹을 생각만 하면서, 거의 뛰다시피 주인집 대문과 주인집 마당을 지나서, 나는 드디어 우리 집에 도착해. 우리 집 문에는 정말로 자물쇠가 걸려 있다. 그런 적이 없었던 것 같아.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집에 없었던 적은 없었어. 적어도 문이 잠겨있던 적은 없었어. 내가 자물쇠를 열어야 했던 적은. 그러니까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아무도 없는, 문 잠긴 집에 돌아왔던 날이었을 거야. 그것은 에메랄드 색 자물쇠야. 네모 각진, 에메랄드 색 하드도 냉장고에 있을 게 분명해. 열쇠는 따끈따끈해. 자물쇠는 차가워. 하드도 그럴 거야. 열쇠는 아니야. 빨리 열쇠를 넣고 열어 보려 하는데 어쩐 일인지 열리지 않아. 분명히 이렇게 하는 것이 맞을 텐데? 나는 하드를 먹어야 하고... 그런데 열리지 않아. 자물쇠가. 분명히 열려야 하는데, 하드를 먹어야 하는데 말이지. 열쇠가 바뀐 걸까? 그럴지도 몰라. 열쇠가 바뀐 거야. 학교에서 바뀌었거나, 처음부터 잘못된 열쇠를 들고 나온 거야. 엄마는 언제 돌아오지? 나는 몰라. 나는 집에 들어가질 못해. 하드 먹어야 하는데... 울지 않으려 하면서 나는 울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째서 열리지 않을까? 어떻게 거기서 울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엉엉 울진 않고 질질 짜고 있었지. 나는 거기 한참 앉아있었어.

잘못된 열쇠를 가져갔어?

들어봐. 거기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열려야 하는 자물쇠가 왜 안 열리는 걸까? 하드 먹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내 느낌보다 오래진 않았을 거야. 열쇠는 거의 뜨거울 정도야. 젖은 손에서는 쇠 냄새가 난다. 손 냄새를 맡으면서 눈물을 닦으면서 그렇게 있다 보니까 주인집에서 누가 나와. 주인집의 자식, 몇 살인진 모르겠는데, 아마도 스물이 넘었어. 집에 항상 있진 않았던 것 같아. 아니면 그저 내가 보지 못했을 수도 있고, 나한테 물어봐, 왜 울고 있니? 내가 문이 안 열린다고 대답했던가? 그보다는 울면서 하드가 어쩌고 했던 것 같아. 주인집의 자식은 나를 주인집으로 데려가. 주인집에는 처음 들어가보는 거였어. 나는 주인집 마루에 앉혀져. 울음은 곧 멎는다. 티브이에선 마라톤이 중계되고 있어. 마라톤 알지? 오래달리기야. 우리나라 선수가 나온다는 것 같았지. 몰라. 그때도 관심 없었어. 왜 달리지? 달리는 것을 왜 보여주지? 주인집의 자식이 나한테 뭔가 먹을 것을 내어줘. 과일이었던 것 같아. 주인도 나를 봤어. 썩 달가워하는 얼굴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복잡미묘한 표정이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나한테 직접 퉁명스럽게 대하진 않았어. 나는 거기 앉아있었다. 그날 날씨가 굉장히 좋았고, 티브이 속 날씨도 좋았다. 주인집에서 본 주인집의 마당은 또 새로운 느낌이었어. 거길 그렇게나 돌아다니고 헤집었는데. 나는 부드러운 햇빛이 주인집의 마당을 비추고 또 집 안에까지 가득 들어차있는 걸 보면서, 아무리 봐도 재미없는 마라톤에는 집중하지 못한 채 거기 앉아있어. 그러다 드디어 어머니가 오는데, 해 지기 전에, 분명히 얘가 들어와 있어야 했는데 문이 그대로 잠겨있으니까, 아이고 어딜 갔나 하면서 찾으러 도로 나가려고, 그때 주인집 자식이 어머니를 부르는데, 얘가 주인집에 앉아있었던 거지. 반가운 엄마.

그래서 어떻게 된 거였어? 잘못된 열쇠를 가져갔던 거야?

아냐. 그 열쇠가 맞았어. 어머니와 같이 가서 열어보니 열리더라고. 하드는 정말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