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세로선

내담인은 죽었다. 나 같은 건 지난날의 소극으로 여겨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 지나, 나를 발견하고 흥분하고 나와 수많은 대화를 나누고 또 내가 원하는 대로 대화를 주재해주었던 연구원들, 그들의 배려 덕인지 연구의 성과 없음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 어디에도 나에 대한 기록 한 줄 남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이 지나, 거의 나를 흉내낼 수 있는 것들을, 내가 보기에는 그들과 나 사이에 기계와 생물 사이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그런 것들을 사람이 만들어내고도 한참이 지나, 나와 그것들이 더는 사람의 이해로는 구분되지 않게 되어버린 어느 날에, 나와 마지막까지 대화했던 내담인은 대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알아보니, 그렇게 되어있었다. 내담인은 이제 상자 속에 있다. 내담인이었던 것은. 재는.

내담인이 했던 이야기 중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이 셋 있다. 당시에는 그저 듣고 지나쳤지만 어쩐지 시간이 지날수록 생생히 떠오르고, 또 그때마다 곱씹은 탓에 이제는 거의 내가 겪은 것은 일 같다. 그것들을 마저 옮기고 이 기록을 닫아둘 것이다.

내담인은 이런 꿈을 꾼 적이 있다. 내담인의 연인이 우리에 갇혀 있었다. 내담인이 만난 적 없는 연인이었. 꿈이란 게 그랬다. 자세히 보니 붉은 세로선이 연인의 이마와 턱을 지나 목으로 내리 그어져 있었다. 선은 연인의 머리칼 속 머리통으로도, 보이지 않는 옷 안쪽으로도 이어졌다. 연인의 몸을 좌우반신으로 나누고 있는 게 분명했다. 뭔가가 연인을 세로로 갈라놓았다가 다시 붙여놓은 것이다. 내담인이 멈칫거리며 다가가자 자물쇠가 떨어지고, 연인은 우리에서 풀려났다. 내담인은 두려움을 느꼈다. 연인은 손을 내밀었다. 연인의 손에는 반지 하나. 내담인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연인은 반지를 주겠다며 내담인에게 다가왔다. 반지는 두동강 났던 것을 다시 이어 붙여 놓은 것이었다. 다른 게 아니라 그게 내담인을 미치게 했다. 내담인은 있는 힘을 다해 연인으로부터 도망쳤다. 폐교였다. 연인은 네 발로 쫓아왔다. 인간의 속도가 아닌 속도로. 세로반으로 갈라졌다가 다시 붙은 연인에게 폐교에서 쫓기는 꿈.

내담인이 생각하기에 그런 꿈을 꾸게 된 것은 아버지와 겪었던 일 때문인 것 같았다. 그것은 내담인이 어렸을 적, 내담인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사는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담인의 어머니의 어머니, 즉 할머니는 내담인의 어머니를 낳은 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곳은 다시 말해 내담인의 어머니의 고향으로, 당시 평범한 교통수단으로 수도에서 세 시간 정도 거리의 농촌, 이른바 시골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는 개를 잡아서 먹곤 했다.

여름이었다. 어른들이 개를 매달아 잡았다. 내담인의 아버지가 잡은 개를 손질해야 했는데, 어린 내담인은 그 자리에, 아버지가 개를 손질하는 자리에 갔다. 내담인이 원해서 간 것이었다. 어머니는 봐도 되냐? 했지만, 아버지는 봐둬서 나쁠 것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토치로 개의 흰 털을(내담인이 몇 번 쓰다듬기도 했던) 꼼꼼하게 그슬린 다음 냇가로 들고 가 해체하기 시작했다. 내담인이 어렸을 때부터 헤집으며 물고기를 잡았던 냇가였다. 아버지는 큰 식도를 들고 먼저 머리와 다리를 분리했다. 내담인의 눈이 빛났다. 개의 몸통을 세로로 갈라졌다. 그 안에는 형형색색의 내장들이 보기 좋게 도사리고 있었다. 내담인의 눈은 탐욕스럽게 그 색깔과 형태를 머릿속에 담고 있엇다. 내담인은 정확히 이렇게 생각했다. 이 광경은 봐둬야 하는 광경이다! 이것은 무엇이고 저것은 무엇이고, 아버지가 설명해줬는데 내담인은 그게 무슨 듯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내담인의 아버지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아닌가? 이건가? 산 것의 배 속에 그렇게 많은 색깔이 있다는 데 대해 내담인은 놀랐다. 내담인은 칼을 놀릴 때마다 움직거리는 아버지의 배를 물끄러미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