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희에게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의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어쩌다 우리가 만나고 헤어졌는지도.

우리가 만난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너와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 겨울 우리는 강가에 있었어. 강물을 보고 있었다.

지금 기억이 나고 있다. (지금 강물을 보고 있어...)

넌 세상이 망하고 있다고 했지. 그때의 그 일은 시작일 뿐이라고.

네 목소리를 떠올리며 나는 지금 웃고 있다.

네 손이 기억난다. 눈도. 그건 정말이었어. 그때의 그 일도

정말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시작일 뿐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아. 내가 ‘일어날 일이 일어난다’고 말하자 너는 싫어했어.

그렇지 않다고 했지.

생각을 다시 하라고.

나는 지금 생각을 다시 하고 있어.

다 기억이 난다. 내가 맞게 기억하고 있니?

아니면 다른 것이 있었던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